"치매 오기 전 맡겨라"…노후자산 지키는 공공신탁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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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28 08:00 수정2026.04.28 08:42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례1> 요양시설에 치매 노모를 모시고 있는 59세 A씨. 병원비와 요양시설 비용 등으로 약 1500만원이 급하게 필요해졌습니다. A씨는 어머니 계좌에 있던 2억5000만원의 예금을 떠올리고 은행을 찾았지만, 창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금융회사가 향후 상속 분쟁 등을 우려해 가족의 인출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은행 직원은 “사전에 신탁을 설정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결국 A씨는 법원에 성년후견 개시를 신청했고,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어머니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례2> 치매 전(前) 단계로 분류되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74세 B씨. 아직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점차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향후 치매로 악화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치매 노인을 노린 보이스피싱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는 재산 관리에 대한 걱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자녀들에게 자산 관리를 맡기기에는 부담이 크고, 매달 들어오는 연금과 예금을 스스로 관리하기에도 불안한 상황입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치매 머니’를 둘러싼 재테크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치매 머니란 65세 이상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을 뜻합니다. 치매로 인한 판단력 저하로 사실상 사용이 막힌 돈입니다.

그래프=남정민 기자

그래프=남정민 기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은 지난해 172조원을 넘어섰고, 2050년에는 488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노인들의 자산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관리 부실, 금융사기 위험성도 동시에 확대되고 있습니다.

치매 머니 방어의 핵심은 ‘사전 예방’입니다. 금융거래에서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되기 전에, 현재 보유한 자산을 언제·어떻게 활용할지, 또 누구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맡길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치매 발병 이후에도 대응은 가능하지만, A씨 사례처럼 성년후견 개시 등 법적 절차를 거칠 경우 수개월이 소요될 수 있어 긴급한 자금 수요에 적시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치매 공공신탁’입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이달부터 치매 안심재산 관리 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요. 국민연금공단이 수탁자가 돼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노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고 사전에 설정한 재정계획에 따라 의료비·요양비·생활비를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계획된 현금흐름’입니다.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매월 필요한 비용을 자동으로 배분해 자산이 실제 생활에 쓰이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고액 인출이나 계약 변경은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해 사기나 경제적 학대를 사전에 차단합니다.

가입 대상은 치매 환자뿐 아니라 경도인지장애를 포함해 ‘재산 관리가 어려운 상태’로 판단되는 노인입니다. 다만 치매 환자는 후견인 선임이 필수이며, 경도인지장애 역시 대리인 동석이 요구됩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치매환자의 경우 인지능력 저하로 신탁계약 체결이 어렵고, 계약의 유효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어 원칙적으로 후견인 선임 필요하다”며 “경도인지장애 환자 역시 신상 활동을 대리하는 대리인이 필요하고, 대부분 친족 또는 후견인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적절한 대리인이 없을 경우에는 정부에서 공공후견인을 연계해 줍니다. 신청부터 이용까지는 통상 1~2개월이 소요됩니다.

재산 범위는 현금·예금·연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한정되고, 한도는 최대 10억원입니다. 고액 자산가 중심의 민간신탁과 달리 ‘중산층 보호’를 염두에 둔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70%가 기초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용도 기초연금 수급자는 무료, 그 외는 위탁재산의 연 0.5%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합니다. 은행과 보험사의 민간 신탁은 최소 가입액이 수천만원에 이릅니다. 그리고 처음 계약을 맺을 때, 자산을 관리할 때마다 수수료를 다 따로 받죠. 하지만 정부의 치매 안심재산 관리 서비스는 위탁재산이 10억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500만원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신탁 자산 규모가 10억원을 초과하거나, 현금성 자산뿐 아니라 부동산까지 함께 관리하고자 하는 경우, 그리고 아직 경도인지장애 등 판단력 저하가 나타나지 않은 단계라면 민간 금융상품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은행과 보험사는 가입자가 사전에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치매 발생 시 지정한 수익자에게 자금을 지급하는 치매신탁 상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언대용신탁’, ‘치매 안심 신탁’, ‘보험금청구권 신탁’ 등이 있습니다.

치매 안심 신탁은 인지능력이 저하될 경우를 대비해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하도록 설계된 상품입니다. 공공신탁과 유사하죠. 다만 민간 상품인 만큼 자산 운용 범위가 넓고 맞춤 설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아 중산층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는 자유롭게 자산을 운용하면서 사망 이후에는 미리 정한 비율대로 재산이 자동 분배되는 상품입니다. 유언장과 달리 법적 분쟁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 설정 비용과 관리 수수료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일정 자산 규모 이상의 고령층에게 적합합니다. 유효 시점은 치매 발병 이후가 아니라 ‘사망’ 이후입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사망보험금을 신탁 형태로 관리해 수익자에게 분할 지급하는 구조입니다. 일시에 거액이 지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이나 자금 오남용을 막는 데 효과적이며, 상속 재원 관리가 필요한 자산가나 다자녀 가구에 유리합니다.

민간신탁이 ‘자산 증식과 이전’에 초점을 둔다면, 공공신탁은 ‘자산 보호와 지출 통제’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재테크 관점에서는 두 상품이 경쟁 관계라기보다 ‘보완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제 활용 전략도 이원화가 필요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은 민간신탁을 통해 투자와 상속을 설계하고, 생활비 성격의 현금성 자산은 공공신탁으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연금과 보험을 결합하면 치매 이후에도 현금 흐름이 끊기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 주의할 점은, 이달부터 시작되는 공공신탁은 ‘시범사업’이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처음 해보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 대상도 액수도 제한이 있습니다. 2028년부터는 공공신탁도 본사업에 들어갑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특히 치매가족을 돌보고 있지만 민간신탁을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라며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지만, 2028년 본사업 도일 때는 서비스 지원 대상을 중산층으로 더 많이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핵심은 사전 설계입니다. 자산 일부를 신탁으로 이전해 비상시 자동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연금·보험·신탁을 결합한 현금흐름 중심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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