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인텔리빅스 대표·aSSIST 석학교수·CES2025·2026 혁신상 심사위원지난 2년간 글로벌 시장이 인공지능(AI) 모델을 두고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어떤 모델이 가장 강력한가”였다.
하지만 이제 질문이 바뀌고 있다. “세계 지정학 질서가 흔들릴 때, 그 AI 모델의 수도꼭지를 잠글 권한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다.
AI가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국가 안보와 기업 운영의 핵심 인프라가 되면서, 기술 패권국이 AI 접근권을 통제 수단이자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현실적인 리스크로 부상했다.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SW)가 아니라 반도체나 위성 시스템 같은 국가 차원의 전략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픈AI의 최신 초거대 AI 모델인 'GPT-5.6' 공개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 외신에 따르면 오픈AI는 국가 안보를 우려해 출시를 늦췄고, 정부 당국자들과의 추가 테스트와 긴밀한 협의를 거친 뒤에야 광범위한 출시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백악관은 “공식적인 사전 허가나 승인은 필요 없다”며 수위를 조절했으나 시장이 받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최고 성능의 프런티어 AI 모델은 이제 출시 전부터 안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6월 미국 정부는 안보 권한을 근거로 앤트로픽에 클로드 '페이블 5와 미토스 5'의 외국 국적자 접근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페이블 5는 복구됐으나, 보안 특화 모델인 미토스 5는 여전히 일부 신뢰 기관 중심으로 제한 제공되고 있다. 기술 통제의 축이 칩이나 장비 같은 하드웨어에서 AI 모델 접근권 자체로 이동했음을 뜻한다.
중국 역시 빗장을 걸어 잠글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즈푸AI(Z.ai) 등 주요 기술 기업들과 회의를 갖고 최첨단 AI 모델의 해외 접근 제한을 검토 중이다.
“원격으로 꺼질 수 있는 엔진은 전차에 얹을 수 없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뼈저리게 절감한 교훈이다.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의 로만 키슬리 최고AI책임자(CAIO)는 “언제든 외부에서 원격 차단할 수 있는 AI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적 취약점이 된다”며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대국민 행정 서비스 앱 '디이아(Diia)'의 AI 비서는 구글의 원격형 제미나이 모델을 쓰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일일이 가리고 지운 뒤에야 겨우 AI를 이용하는 눈물겨운 임시방편을 쓰고 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자국 이동통신사 키이우스타(Kyivstar)와 함께 구글의 경량 오픈 모델인 젬마(Gemma)를 기반으로 정부, 상업, 군사 영역에서 독자 운용할 수 있는 로컬 자체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유럽 역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는 미스트랄 AI를 앞세워 미국 빅테크 독점에 맞서고 있고, 독일의 알레프 알파는 규제 산업과 공공 영역을 타깃으로 주권형 AI 솔루션을 내세우고 있다. 포르투갈 또한 자체 오픈소스 모델을 발표하며 유럽의 자율성 강화에 동참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에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은행의 사기 탐지, 제약사의 신약 후보물질 설계, 로펌의 계약서 자동 분석 등 현대 비즈니스의 심장부에는 모두 클라우드 너머의 해외 AI가 이식돼 있다. 만약 이 AI가 외국 정부의 명령 한 마디나 빅테크 기업의 정책 변경으로 일시에 끊긴다면, 이는 단순한 IT 장애가 아니라 기업 가동을 멈추게 하는 '공급망 리스크'이자 '경영적 재난'이 된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소버린 AI를 처음부터 개발하자는 것은 아니다. AI 시스템에 대한 '선택권'과 '통제권'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평소에는 외부의 뛰어난 AI를 빌려 쓰더라도, 회사의 심장과도 같은 중요 업무만큼은 외부망이 끊겨도 우리 회사 내부 서버에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플랜 B(백업)'를 마련해 두는 영리한 분산 전략, 기술적 자립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의미의 '소버린 AI'다.
최은수 인텔리빅스 대표·aSSIST 석학교수·CES2025·2026 혁신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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