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범죄와 디지털 금융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의해 감금·피살된 사건과 필리핀에서 국내로 대규모 마약을 유통한 사건 등이 공론화되면서 마약·보이스피싱·불법도박 등 초국가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국가범죄는 국경을 넘나들며 금융시스템을 이용해 범죄수익을 세탁하고 있다. 디지털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의 확산은 자금 이동 속도를 급격히 높였고, 범죄조직은 국가 간 규제 차이와 감독 공백을 악용하고 있다. 이제 금융회사의 의심거래보고(Suspicious Transaction Report, STR)*는 단순한 규제 준수 절차가 아니라 국제범죄를 탐지하고 차단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의심거래보고(STR) : 금융회사등이 금융거래와 관련해 수수한 재산이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 등을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이를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토록 한 제도.
금융이 포착하는 범죄의 실마리
2023년 11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인터폴(INTERPOL) 및 국제 금융정보분석기구 협의체(Egmont Group)가 공동으로 「Illicit Financial Flows from Cyber-Enabled Fraud」(사이버 기반 사기를 이용한 불법 금융 흐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보이스피싱, 투자사기, 로맨스 스캠, 비즈니스 이메일 침해(BEC), 취업사기 등 디지털 기반 사기 범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또한 범죄조직들은 여러 국가에 조직을 분산·운영하면서 대포통장, 자금세탁 조직, 가상자산 및 환치기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범죄수익을 국가 간에 순식간에 이동시키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현대 범죄의 특징은 ‘자금흐름의 국제화’에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범죄 수법 역시 더욱 정교화·대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이러한 초국가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기관(FIU·경찰 등)과 금융회사·통신사·플랫폼기업 간의 공공·민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사이버 기반 사기 범죄를 탐지·차단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의심거래보고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FATF는 2023년 10월 자금세탁 범죄 피해자들의 자산 회복(Asset Recovery)을 강화하기 위해 각 국가의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이 범죄수익과 관련된 금융거래를 정지하거나 거래 승인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토록 권고하였다. 또한 각국이 다른 국가의 동결·압류·몰수 요청에 적극 공조하도록 관련 기준도 강화했다.
제도 혁신과 현장의 안보 의식
국내에서도 금융정보분석원은 2026년 업무계획에서 마약·도박·테러자금 등 범죄자금을 신속히 동결해 추가 범행을 차단하기 위한‘중대 민생침해범죄 의심계좌 정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6년 1월에는 초국가범죄와 민생침해범죄 관련 최신 자금세탁 수법을 반영하여 ‘자금세탁 의심거래 참고유형’을 전면 개정했다.
FATF와 금융정보분석원이 공통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초국가범죄 대응의 핵심은 금융정보이며, 그 출발점은 금융회사가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의심거래보고’라는 점이다. 범죄자금은 결국 금융시스템을 통과할 수밖에 없으며, 그 흐름을 가장 먼저 포착할 수 있는 곳 역시 금융회사다. 의심거래보고는 단순한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범죄조직의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하며, 국제범죄를 무력화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를 위해 금융회사는 우선 금융정보분석원의 의심거래 참고유형을 내부 AML 업무지침과 전산시스템에 적극 반영하여야 한다. 또한 신종 범죄수법까지 탐지할 수 있도록 의심거래 유형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유형을 보다 구체화하고 실효성이 낮은 유형은 정비함으로써 범죄자금 탐지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 구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장의 경각심이다. 의심거래보고는 여전히 금융회사 직원의 경험과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의 관심과 책임감이 없다면 의미 있는 의심거래보고는 나오기 어렵다.
한편, 금융당국 역시 금융거래의 디지털화에 따른 신종 자금세탁수법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범죄와 관련된 의심거래 유형을 테마별로 분석해 금융 업계에 유의사항 등을 전파하고, AML 취약점을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해외 당국 및 수사기관과의 공조를 확대해 범죄자금의 동결·압류·몰수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제 의심거래보고(STR)는 단순한 내부통제 수단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금융안보 체계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금융회사와 금융당국, 수사기관 그리고 국제사회가 긴밀히 협력하여 범죄자금의 흐름을 끝까지 추적하고 환수할 때, 초국가범죄에 대한 실질적 대응도 가능해질 것이다.
[화우 자금세탁방지인사이트]에서는 올해 2월 출범한 법무법인 화우의 AML/내부통제 솔루션센터 구성원들이 자금세탁방지 전 영역과 다양한 내부통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박상현 법무법인 화우 고문(전 금감원 자금세탁방지실장)은 자금세탁방지제도 관련 금융당국의 검사제재 대응과 사전적 위험예방, 내부통제제도 구축 관련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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