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마음까지 데우는 ‘3000원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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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여는 사람들] 〈6〉 ‘청년식탁 사잇길’ 김회인 신부
대학가에 반찬 무한리필 식당 열고… 직접 주방서 일하며 청년들 맞아
전주교구 지원-후원금 받아 운영… 심리상담소-공방도 열어 ‘쉼’ 제공
“전 세대 교감하는 식탁 됐으면”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 앞 상가 2층에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에서 김회인 신부가 식당의 유일한 메뉴인 김치찌개를 들고 웃고 있다. 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 앞 상가 2층에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에서 김회인 신부가 식당의 유일한 메뉴인 김치찌개를 들고 웃고 있다. 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런치플레이션’. 2024년 생긴 이 신조어는 점심을 뜻하는 ‘런치(Lunch)’와 가격 급등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치솟는 물가로 외식 비용이 오르면서 점심값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자 이런 신조어까지 나왔다.

1만 원으로는 사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은 이 런치플레이션 시대에 3000원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북 전주시 전북대 앞 한 상가 2층에 있는 ‘청년식탁 사잇길’이다. 이 식당의 메뉴는 ‘김치찌개’ 단 한 가지다. 3000원만 내면 밥과 반찬을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재료는 먹는 사람의 기호를 고려해 돼지고기, 참치, 두부, 비건 등 네 가지다. 햄이나 어묵, 라면, 치즈를 1000원을 내고 추가해 넣으면 나만의 김치찌개를 맛볼 수도 있다.

● 따뜻한 한 끼로 청년을 맞는 사잇길

청년식탁 사잇길은 천주교 전주교구의 지원으로 2023년 문을 열었다. 대학생 시절부터 소년원의 아이들을 돕는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해 온 김회인 신부(50·바오로)가 대표를 맡아 꾸렸다.

“요즘 청년 세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쉴 수 있는 시간조차 갖기 어렵잖아요. 고립감과 상실감도 커지고 있고요. 청년 세대가 청년다움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지지하기 위해 맛있는 밥을 지어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김 신부는 가게 문을 열기 전 청년을 돕는 사업을 하는 다른 지역 기관과 천주교의 다른 교구를 찾아다니며 운영 방법을 배웠다. 점포를 구하고 리모델링을 마친 뒤 함께 일할 구성원을 뽑은 김 신부는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일하며 따뜻한 한 끼를 원하는 청년들을 맞았다.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하루 평균 60명 이상이 찾아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갔다. 청년들은 “집밥 같아서 좋다”며 고마워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을 응원하기 위한 취지에 공감한 후원자들의 손길도 이어졌다.

하지만 김치찌개는 팔면 팔수록 손해였다. 2024년 김치찌개를 팔아 7000만 원의 수익을 냈지만 식당 운영비는 수익을 훌쩍 넘었다. 교구에서 지원한 돈과 후원금으로 겨우겨우 운영했다. 앞으로가 문제지만 김 신부는 지난 2년 동안 운영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3000원 밥집이 지속 가능하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어떠한 경영 원리로도 이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지만 인문학적 변수인 나눔에 대한 신념이 더해지고 이런 신념을 가진 분들이 많아진다면 지속성은 확보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공감과 쉼이 있는 청년식탁

청년식탁 사잇길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다. ‘식당’이 아닌 ‘식탁’이라고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신부는 “과거 각 가정에는 마당이 있었는데 어른들의 경험을 아래 세대에 전해주는 장이었고 아래 세대에는 어른들의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서 “마당이 많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는 식탁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신부는 이곳이 공감의 장이 되길 바랐다. “이곳을 찾는 다양한 세대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영양분을 담은 밥을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했으면 좋겠어요.”

청년식탁은 청년의 아픈 마음도 어루만져 준다. 식당 한쪽에 있는 카페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심리상담도 이뤄지고 있다. 심리상담을 받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거나, 비용 등의 문제로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마음의 쉼터를 제공하고 싶어서다. 청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를 만든 이들과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김 신부는 “청년식탁 사잇길은 ‘육체적인 밥’을 넘어 ‘문화적인 밥’과 ‘마음의 밥’을 만드는 플랫폼이 목표”라며 “단지 저렴한 밥집이 아닌, 청년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아닌 모든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맛있는 집이 되도록 힘을 쏟겠다”고 했다.

“(청년들이) 힘들다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또 고민하는 가운데 자신이 꿈꿔 왔던 일을 내려놓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은 힘들다 하더라도 분명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어요.” 식탁에 놓인 김치찌개에서는 김 신부의 바람처럼 희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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