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부터 미래 전쟁까지
유명 군사전략가가 내놓는 진단
컨플릭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앤드루 로버츠 지음, 허승철·송승종 옮김, 책과함께 펴냄, 3만8000원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말은 전쟁이 인류의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방식과 전략이 바뀔 뿐 사라지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계속되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가능성마저 불거진 이 시점에서 현대전이 변천한 과정과 미래의 전쟁 양상을 진단하는 책이 출간됐다.
군사전략가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전 이라크 주둔 연합군 사령관)와 군사사학자 앤드루 로버츠가 쓴 ‘컨플릭트’는 전쟁의 진화에 영향을 준 28개 현대전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중국 국공내전(1946~1949)부터 6·25전쟁(1950~1953), 걸프전(1991), 코소보 전쟁(1998~1999), 이스라일·하마스 전쟁(2023~2024)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80여 년간 발생한 주요 전쟁의 양상을 샅샅이 파헤친다. 새로운 군사 기술과 무기, 교리와 훈련, 정보 경쟁 등 전쟁의 결과를 좌우한 요소들을 설명하고 성공과 실패를 가른 지도자들의 전략을 살핀다.
6·25전쟁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에 대한 분석이 특히 눈에 띈다. 책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맥아더가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 오판한 것, 연합군의 북진 때 많은 북한군이 한반도 동쪽 해안로를 따라 무사히 탈출하게 한 것, 전선과 수백 ㎞ 떨어진 도쿄에서 오랜 기간 병력을 지휘한 것 등을 실책으로 지적한다.
6·25전쟁이 수십 년 뒤 미군이 베트남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문제들을 처음 드러낸 전쟁이라는 분석이다. 핵무기 개발 뒤 등장한 상호확증파괴 시대에 수행된 첫 제한전쟁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비민주적이고 대중의 지지가 약한 정부와 함께 싸웠으며, 이념으로 무장하고 위력이 과소평가된 적들과 대결해야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퇴행적 전략을 비판한다. 푸틴은 의도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방식의 구시대적 적대 행위를 선택했으나 자살적 인해전술은 양측 모두의 피해를 키웠고, 기갑부대의 진격은 우크라이나의 저가 드론 공격에 의해 좌절됐다.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행위는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며 오히려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에 기름을 부어 국제 사회의 반러 여론을 키웠다.
미래 전쟁을 예측한 부분도 흥미롭다. 책은 일론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시스템을 제공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항하게 한 것처럼 마크 저커버그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정보기술(IT) 거물들이 미래 전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공지능과 슈퍼 컴퓨팅, 딥페이크 등의 첨단 기술로 우주나 가상 공간으로 전장이 확장되고 로봇과 소셜미디어 등이 활약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