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힘들었다. 편지를 써도 편지를 본국에 전해줄 우편배달부가 부족해서다. 장기간 서신 왕래가 끊긴 병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미군 수뇌부는 군 사기 진작을 위해 1945년 유럽 전선에서 우편 배달을 전담할 부대를 창설했다. 전례 없는 징병으로 젊은 남성이 모자란 탓에 부대원들은 855명의 흑인 여성 자원자로만 구성했다. 미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흑인 여성 대대였다. 6888대대로 명명된 이 부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을 발휘해 2년간 전장에 쌓인 수십만 통의 우편 배달을 3개월 내 모두 처리했다. 당초 예상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였다.
대만은 정부군을 창설한 1948년부터 여군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엔 저출생으로 남성 병역자원이 모자라 부사관과 장교뿐 아니라 일반 병사도 여성 지원자 비율을 늘리고 있다. 중국과의 갈등 고조로 모병제를 징병제로 바꾸고 남성 의무복무 기간을 늘린 뒤 젊은 남성층이 강하게 반발한 상황도 고려했다.
우려한 것보다 여성 자원병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남성 의무복무병보다 월급이 50%가량 많고 복무 기간(4년)은 장교(5년 이상)보다 짧아 경쟁률이 10 대 1이 넘는다. 지난해부터 전역한 여군을 예비군 대상에 넣었는데도 여성 현역병 경쟁률엔 큰 변화가 없다.
한국도 대만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까. 최근 대만 병역제 관련 보고서를 낸 국방연구원의 김영곤 연구원은 병역자원이 모자란 한국도 대만처럼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용하고 여성 현역병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앞서 올 4월 총선에서도 개혁신당이 이와 비슷한 ‘여성희망 복무제’라는 공약을 제시했다. 여성 지원자에 한해 단기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고 나중에 소방과 경찰 같은 특정직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는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아직 먼 얘기일 수 있으나 대만(0.86명)보다 합계출산율이 낮은 한국(0.72명)에서도 언젠가는 여성 현역병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