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이건 다 상대방 책임이에요. 저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변호사로서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사건은 쉽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의뢰인은 애초에 소송에서 자기 책임을 최대한 경감시킬 의도로 변호사를 찾는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려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책임이라는 말에는 여러 개의 레이어(layer)가 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 도의적 책임, 정치적 책임, 국가적 책임, 시민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책임… 수많은 종류와 깊이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법적 책임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책임을 부인하며 사안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상태가 많다.
변호사로서 할 일(법적 책임 방어)만 하면 될 것을, 요가를 하더니 갑자기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운운 하며 이상한 도덕 강좌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도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사건의 승소 전략에 관한 이야기다.
책임은 주거니 받거니 공처럼 던지고 피하고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그걸 받아들이든, 영원히 부인하든, 숨 쉬고 존재하는 이상 어떤 형태와 크기로든 존재한다. 그러나 대개 다른 사람의 상황에서는 책임이 잘 보이는데, 나와 관련되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바닷속 물고기가 자기가 바닷속에서 수영한다는 것을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책임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짐'이 아닌, '응답'의 선언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물고기와 달리 의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매일 숨 쉬듯 들이쉬고 내쉬는 책임을 의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
그렇게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책임을 의식하는 순간 불편해져서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뭔가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예를 들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살펴보자. 우리 큰 아이 보다도 어린 병사들이 매일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무거운 마음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해 버린다. 그러나 그 순간 마음은 다소 가벼워질지 몰라도, 전쟁의 비극에 대해 느끼는 의식과 감각까지 모두 차단하고 외면하게 된다.
물론, 내가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외교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대단한 지위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어떤 법적·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나와 완전히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걸까. 인간으로서, 그냥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최선일까.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나랑 무관하다”는 말과 동격이다. 책임은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으라는 강요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온전하게 마주하겠다는 선언이다. 외국에서의 전쟁도, 나와 상관 없지 않다. 마음이 아프고,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사람 간의 이해관계 갈등이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인 전쟁을, 방송을 통해 눈앞에서 목도한 후 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려고 노력한다.
그 것이 해외의 전쟁에 대해 내가 인간으로서 반응하는 책임의 방식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지금의 전쟁을 멈추냐고?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내 컨디션에 따라 사람들에게 친절함과 불친절함을 들쭉날쭉하게 행동한다면. 당장 내 주변의 공기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며, 그것은 전쟁은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작은 갈등의 시초가 될 수 있다.
책임을 놓아버리고 나와 무관하다고 구분 짓는 순간 인간으로서 내가 상황을 인식하고 바라보며,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차단하는 것이다. 책임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쓸데없는 죄책감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응답을 하라는 뜻이다.
승소 전략: '법적 책임'과 '응답 능력'의 분리
사건을 이기자고 모든 책임을 부인하면, 그건 단지 서글프기만 한 일이 아니라, 소송 전략상으로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법적 책임은 엄밀하게 다투고 축소해야 하지만, 사건의 주체로서 나의 인식과 대응까지 축소해버리면 오히려 설득력 자체가 약해진다.
결국 승소 전략은 법적 책임(Liability)과 응답 능력으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 두 층위를 분리하면서 동시에 가져가는 데 있다. 외부적으로는 책임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귀책을 명확히 부각시키되, 내부적으로는 이 사건 전체에 대해 인식하고, 바라보고, 응답하는 책임은 무한히 열어두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사실관계의 빈틈을 메우고, 불리한 정황도 통제 가능한 서사로 전환할 수 있다.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만으로는 법원을 움직일 수 없고(오히려 무책임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사건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다”는 상태에 도달해야 비로소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법원도 결국은 법적 책임을 판단하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응답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책임의 범위를 정교하게 제한하면서도 사건에 대한 응답 능력만큼은 끝까지 열어두는 것, 그것이 실질적인 승소를 이끄는 태도다.
반응(Reaction)에서 응답(Response)으로
인간의 응답 능력으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Response+Ability)’은 인도의 요기니이자 구루인 삿구루(Sadhguru)가 제시한 개념이다. 세상의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책임이라는 이 위대한 능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요가와 명상의 도움이 필요하다.
책임을 발현한다는 것은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에 맞게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요가와 명상은 바로 그렇게 바라보고 반응할 수 있는 ‘내부 상태’를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다. 사건을 대할 때 우리의 반응은 대개 과거 경험, 감정, 방어기제에 의해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영어로는 응답(response)과 대조적인 충동적인 반응(reaction)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 자동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책임은 쉽게 회피나 과잉 반응으로 흐른다.
꾸준한 명상과 호흡, 신체 인식은 이 자동 반응과 나 사이 간격을 만든다. 그 간격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책임은 부담이 아니라 능력으로 작동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반응성(Reactivity)의 상태에서 살아간다. 공격적인 문자를 받으면 화가 나고, 거래가 무산되면 패배감을 느낀다. 이 상태의 우리는 방화벽이 없는 컴퓨터와 같다. 외부의 어떤 해커라도 우리 시스템에 접속해 감정의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실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요가와 명상을 결합한 ‘이너 엔지니어링(Inner Engineering)’을 통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전까지는.
책임은 부담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가장 큰 자유
나는 책임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2년전 이너 엔지니어링을 전수받으면서 경험했고, 지금까지 그 덕을 보고 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잘 다룰 수 있게 된 후부터 마주하는 책임은, 더 이상 나에게 피해야만 할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고객의 책임도 어떤 무게든 기쁘게 짊어질 수 있게 됐다. 요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합일(unification)이라는 뜻이다. 나랑 상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지어 선택적인 책임을 진다면, 요가의 정신과 모순될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능력을 제한하여 내면까지 속박하는 일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편안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책임을 부정하고 스스로 설정한 안락함의 울타리 속에 노예가 되느니,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응답을 하는 책임을 선택하며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를 누리겠다.
군대는 안 가봤지만, 군대에서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역설적으로, 불편하고 짜증나는 상황을 모든 책임을 다해 마주할 수 있게 되면 내면의 응답 방식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상식적으로, 내가 응답 방식을 고를 수 있다면 당연히 힘들어하는 쪽보다는 즐거워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외부 상황은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지만, 요가와 명상을 통한 내면 설계를 통해 내 마음이 응답하는 방식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이런 선택이 가능하다.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즐거움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인 인간의 몸과 마음, 나 자신을 운용하는 매뉴얼을 익히는 과정이 바로 이너 엔지니어링이다.
이 여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너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에 참석해 보기를 권한다. 최근(21~24일) 국내에서도 이샤 파운데이션의 이너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내면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통해, 당신도 보다 깊이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도구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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