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모든 것/백수린 지음/268쪽·1만7000원·문학과지성사
단편 ‘눈이 내리네’의 주인공 ‘다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모할머니와 동거를 시작한다. 빈방이 많은 할머니댁에 하숙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다. 갓 스무 살이 된 다혜의 눈에 비친 70대 할머니는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기침 소리, 코 푸는 소리, 앉았다 일어날 때 내는 신음. 걸어 다니면서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며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꼭 닫지 않은 채 볼일을 보는 사람.
오래된 집답게 방음에 취약해 할머니의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살 수밖에 없다. 다혜는 늙음이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 품위를 잃고 수치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갓 성인이 돼 이성에 눈뜬 새내기에게 귀가를 재촉하는 할머니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다혜 역시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의 중반기에 들어선다. 더는 죽음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든 다혜는 문득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마침 하늘에서 그해 첫눈이 내렸다. 두 사람은 말을 잃은 채 앙상한 나뭇가지와 메마른 꽃 덤불이 흰빛을 덧입는 광경을 봤었다. 그가 할머니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할 것 같다 여긴 순간이었다.눈 이야기가 많지만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봄’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고 말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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