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생의 중반에서야 이해한 할머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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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백수린 지음/268쪽·1만7000원·문학과지성사


소설집 ‘여름의 빌라’,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로 잘 알려진 백수린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2020년 ‘여름의 빌라’를 출간한 직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4년 동안 쓴 단편 7편을 묶었는데 유독 겨울 풍경이 많다. 눈이 내리거나 쌓여 있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상실 혹은 상실 이후의 풍경을 그리기 때문이다.

단편 ‘눈이 내리네’의 주인공 ‘다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모할머니와 동거를 시작한다. 빈방이 많은 할머니댁에 하숙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다. 갓 스무 살이 된 다혜의 눈에 비친 70대 할머니는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기침 소리, 코 푸는 소리, 앉았다 일어날 때 내는 신음. 걸어 다니면서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며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꼭 닫지 않은 채 볼일을 보는 사람.

오래된 집답게 방음에 취약해 할머니의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살 수밖에 없다. 다혜는 늙음이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 품위를 잃고 수치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갓 성인이 돼 이성에 눈뜬 새내기에게 귀가를 재촉하는 할머니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다혜 역시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의 중반기에 들어선다. 더는 죽음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든 다혜는 문득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마침 하늘에서 그해 첫눈이 내렸다. 두 사람은 말을 잃은 채 앙상한 나뭇가지와 메마른 꽃 덤불이 흰빛을 덧입는 광경을 봤었다. 그가 할머니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할 것 같다 여긴 순간이었다.

눈 이야기가 많지만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봄’이다. 작가는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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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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