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참가 후 들이닥친 경찰들… 전체주의 체제 속 분투하는 가족
지난해 영국 부커상 수상 작품… 인간의 내면 실험적으로 묘사
◇예언자의 노래/폴 린치 지음·허진 옮김/364쪽·1만8000원·은행나무
‘멋진 신세계’ ‘1984’ 등 디스토피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눈여겨볼 신간이다. 기존 디스토피아 소설이 가상 국가 같은 새로운 배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면, 지난해 영국 부커상 수상작인 이 책은 현실이 배경이다. 전체주의 독재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크게 와닿는 이유다.소설은 전체주의에 휩쓸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싸우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주인공 아일리시의 집에 사복 경찰이 찾아든다. 교원 노조에 참가한 남편을 찾으러 온 것. 변호사 접견이나 불법 구금에 대한 항의 등 모든 상식과도 같은 절차가 생략된다.
아일리시의 네 아이는 쉴 새 없이 엄마를 찾고, 나날이 치매가 악화하는 아버지까지 딸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에 징집 통지서를 받은 큰아들, 여권 발급이 거부된 막내까지. 도망도 기다림도 선택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이어진다.
작가는 인물이 느낄 극도의 불안을 따옴표를 없애고, 마침표 대신 쉼표를 쓰는 등의 실험적 형식으로 드러낸다. 새벽 1시 15분 직장 동료가 구금됐다는 전화를 받고 아일리시 부부가 침실에서 나누는 대화다. 남편의 말과 아내의 말이 혼란스레 섞였다.“캐럴 말로는 마이클이 지금 경찰서에 갔는데 제대로 말을 안 해줘서 밤이니까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대, GNSB(치안국)랑 연락도 안 되나 봐, 직통 번호가 없대, 왜 노조에서 나한테 전화를 안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 진짜 큰일 같은데. 아니야. 뭐가 아니야? 어젯밤에 집으로 찾아왔던 형사 명함에 번호가 있어, 핸드폰 번호, 당신이 직접 전화했잖아, 말해봐, 래리,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남편은 침울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고 거대한 압력에 짓눌린 듯 경직돼 있다. 언제부턴가 스스로 범죄자처럼 굴고 있다. 아일리시는 변해 버린 남편을 보며 낯섦과 무력감을 느낀다. 옆집 불은 오늘부터 켜지지 않고, 직장 동료는 오늘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정치적 소요의 실체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채 서서히 주인공의 삶에 파고든다.
“만약 A를 B라고 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하고 또 하면 사람들은 그걸 진실로 받아들여. 물론 이건 오래된 생각이야, 새로울 건 없지, 하지만 넌 책에서가 아니라 네가 직접 살아가는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어.”
소설은 한 개인의 비극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함으로써 뉴스 한두 줄로 접하는 전쟁과 재앙이 실은 수많은 개인의 종말임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시스템이 언제라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 2023년 부커상 수상작. 당시 심사위원단은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국가 폭력과 내몰림의 현실을 그렸다”며 “오늘날 많은 정치적 위기와 공명하면서도 오로지 문학성으로 승리한 책”이라고 시상 배경을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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