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벤 존슨은 왜 스테로이드를 끊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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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공증-근육 향상 등 효과
장기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
충분한 연구 없이 널리 사용
◇스테로이드 인류(기적과 죽음의 연대기)/백승만 지음/316쪽·1만8000원·히포크라테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경악시킨 사건이 벌어졌다.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79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캐나다 벤 존슨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난 것. 이 경기는 미국의 칼 루이스와의 ‘세기의 대결’로 꼽혔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금메달 박탈은 물론이고 향후 2년간 모든 국제대회에 출전 금지된 존슨은 자격 정지가 풀린 뒤에도 금지약물 복용이 드러나 육상계에서 영구 제명됐다. 당시 그가 복용한 약물은 바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였다.

욕망을 채워 주지만 대신 영혼을 내줘야 하는 악마 메피스토와의 계약처럼, 뛰어난 효능을 보장하지만 심하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두 얼굴의 물질. 이 책은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스테로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스테로이드는 단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스테롤(sterol)을 닮은 구조의 화합물들’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다. 따라서 종류와 작용도 다양한데, 임신을 돕고 여성 골다공증에 효과가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유방 세포 분열을 촉진해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 근육을 키우고 일시적으로 성기능 향상 효과도 있지만, 전립샘비대증이나 전립샘암을 악화시키고 장기 복용하면 고환이 쪼그라드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팔다리 근육만 키우는 게 아니라 심장근도 두꺼워지게 한다. 저자는 심장근이 두꺼워지면 심장 내 공간이 줄어 혈압이 위태로울 정도로 높아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스테로이드는 연구자들조차 작용을 예측하기 어려운 물질인데도, 철저한 연구 결과 없이 지금도 버젓이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1996년 3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롤모델이었던 보디빌더 안드레아스 뮌저가 31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 부검 결과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같은 20여 종의 경기력 향상 약물이 검출됐는데, 약물 부작용으로 그의 고환은 극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성미의 상징으로 근육을 키웠지만 정작 성기능이 사라져버린 역설. 스테로이드라는 물질에 담긴 인간의 욕망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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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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