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가 탐구한 예술가의 전성기
‘천재’는 재능 바탕으로 젊을때 성공… ‘거장’은 실험 반복하며 뒤늦게 인정
인상파 이끈 모네는 거장으로 분류… 서로 보완하며 예술 발전 이끌어
◇천재와 거장/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이준호 강은경 옮김/440쪽·2만8000원·글항아리
각 예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누구나 알 만한 예술가들이지만 전자와 후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일찍이 두각을 드러낸 천재, 후자는 대기만성형 거장이란 점이다. 이 책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조각가, 소설가, 영화감독 등을 ‘개념적 혁신가’(천재)와 ‘실험적 혁신가’(거장)라는 개념으로 분류한 뒤 생애주기에 따라 달리 발현되는 창의성에 대해 논한다.
19세기 중후반 실험주의자들이 이끌었던 인상주의는 개념주의자들의 상징주의와 입체파로 대체된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다시 실험주의자들이 득세하며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등 추상표현주의가 대세를 형성한다. 이런 흐름은 이후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천재들’의 팝 아트로 진화하며 또 한 번 뒤집힌다. 책은 “두 방식 중 하나가 과도하다고 인식되는 시점엔 젊은 예술가와 평론가, 화상(畫商) 사이에 그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생에 걸쳐 다수 작품을 남긴 클로드 모네는 어디에 속할까. 60대에 대표작 ‘수련’ 시리즈를 남긴 모네는 오랜 시간 연구와 작업을 반복한 실험적 혁신가, 즉 거장으로 분류된다. 그런 그가 20, 30대에 인상주의 사조를 이끌며 생애 최고가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은 언뜻 모순적으로 보인다. 저자는 “혁신이 전적으로 개별 예술가들에 의해 이뤄지진 않는다”면서 모네의 초기 성과는 그 자신의 천재성이라기보다는 선배 예술가들의 연구 의제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논지를 예술사 밖으로 넓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생애주기를 조사한 결과 개념적 혁신가는 가장 많이 인용된 연구를 43세에, 실험적 혁신가는 그보다 늦은 61세에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개념주의자를 단거리 주자에, 실험주의자를 마라토너에 빗대며 “자신의 기술에 맞춰 창의성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종류가 다를 뿐, 혁신은 누구에게나 있다. 책 마지막엔 자신이 어느 쪽 혁신가에 속하는지 체크해 볼 수 있는 진단표 등이 수록돼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