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왜 이렇게 열심히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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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왜 이렇게 열심히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소설만큼이나 영화로도 사랑받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태양계에서 11.9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혼자 눈뜬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그는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며 얼어버릴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모색한다. 궁금했다. “아니,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세계를 구하겠다고 그렇게 열심일 수가 있나?”

물론 그게 없으면 서사는 전개될 수 없다. 그러나 가끔 나는 전쟁 중에 몰래 도망치는 오디세우스나 반지를 풀밭에 몰래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프로도를 상상하곤 한다. 왜 내가 이 상황에 놓여 “최선”을 다하게 되었는가 질문하는 인물은, 내가 “누구”인가를 질문하고 개인을 되찾는다. 이 또한 고전적인 테마지만 이를 적확한 장치들을 통해 설득적으로 유도해내는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나온 이경의 첫 장편소설 <두 번째 지구 타이드>를 탐나는 책 코너에 가져온 이유다. 지구 멸망 이후 생존자들은 대체 행성 타이드를 향해 성간 이주를 시도한다. 71년간의 항행 끝에 도착한 이들은 바다에 침식되지 않은 땅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결국 다수의 탑승객을 잃었고, 이곳의 바다는 맑은 물이 아닌 진흙으로 넘실댄다.

이곳에서 눈뜬 자신의 동면 이전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눈뜬 ‘아인’은 목 아래의 신체가 모두 기계로 대체된 인물이다. 생존을 위해 신체 일부를 기계화한 이들은, 고전적이게도 메리 셜리의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을 딴 “프랑켄”이라 불린다.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애로우의 미래를 최전선에서 개척해나갈 새로운 인간 집단의 탄생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순간이자, 나 자신이 태어난 순간이기도 하다. (책 27쪽)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는 이들. 아인은 후발대를 통솔해 타이드를 개척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예감한다. 하지만 후발대 조원들과 운명 공동체로 묶이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인은 이들의 사회가 구성된 이력과 자신의 과거에 관한 비밀들을 알게 되고 여러 충격을 경험한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던 것만 같았던 신세계에서 실은 내가 원하고 정한다고 생각한 많은 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은 비단 두 번째 지구에서의 일만은 아닐 것도 같다.

“내게 목적을 준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지 못한 것이 내 한계였다.” (책 222쪽)

새 행성으로 떠날 것인지 지구로 돌아올 것인지 입장을 세워 다투는 파벌과, 배반하고 포기하고 효율을 셈하는 관계들의 얽힘. 혼탁한 물 같은 세계 속에서 아인은 가능성 없는 싸움을 시도한다. 힘 있는 자들의 욕망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의 의지를 회복하는 과정 위에서.

가끔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 다수가 대단한 회의주의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그간 SF와 판타지소설을 읽으며 500가지 쯤 되는 디스토피아를 경험해본 것 같다. 그런데도 이 망해버린 세계에서 질문하고 움직이며 한 발 더 내디딜 용기를 내어보는 인간을 내세우는 많은 이야기를 통해, 회의주의자들의 소박한 희망에 각별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완전히 낯선 세계에 우리 시대의 모순을 확대해 올려놓고 현실에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난제의 해결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점이, 우리가 과학소설을 읽는 큰 매력이자 기쁨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 지구 타이드>는 고전적이면서도 성실하게 이 즐거움을 가득 담은 작품이라고도 말해보고 싶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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