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소셜미디어 시대, 진짜 혁명이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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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교회 성추문을 파헤치는 기자들이 토론하는 장면. ⓒOpen Road Films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교회 성추문을 파헤치는 기자들이 토론하는 장면. ⓒOpen Road Films

1635년 어느 날,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한 학자가 유럽 곳곳의 과학자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목표는 단 하나. 같은 시각, 같은 월식을 관측하는 것. 지중해 연안 곳곳에서 동시에 월식을 관측해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전화도 철도도 없던 시대에 이 거사를 20년에 걸쳐 준비한 사람의 이름은 니콜라클로드 페이레스크다.

그는 갈릴레오와 서신을 교환했고 유럽 지성계의 숨은 연결망을 혼자 짊어졌지만, 저서 한 권 남기지 않은 채 역사 속에 묻혔다. 저서 대신 남긴 것은 10만 장의 편지였다. 페이레스크가 갈릴레오만큼 유명해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생각이 흐르는 통로를 만드는 데 삶을 바쳤다.

[책마을] 소셜미디어 시대, 진짜 혁명이 어려운 이유

신간 <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은 바로 이 조용한 연결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흔히 혁명을 거리의 함성과 군중의 열광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자를 지낸 갈 베커만은 혁명의 진짜 시작은 오히려 침묵에 가깝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위험한 생각은 처음부터 대중적일 수 없다. 너무 낯설고 급진적이기 때문에 작은 공동체 안에서 오랜 시간 다듬어지고, 서로를 설득하고, 실패를 견디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17세기 과학자들의 편지 교류에서 시작해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청원 운동, 소련 반체제 인사들의 비밀 출판물 ‘사미즈다트’, 1990년대 미국 여성주의자들의 독립잡지 ‘진(zine)’,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초기 뉴욕 공중보건 역학자들이 꾸린 이메일 그룹 ‘붉은 새벽’까지 종횡무진 넘나든다.

얼핏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례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혁명이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 축적된 대화의 결과라는 점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1930년대 영국 식민지였던 골드코스트(현 가나)의 사례다. 영국 당국은 제한적 자유주의의 일환으로 신문 발행을 허용했지만, 독자 투고란에서 벌어진 토론이 훗날 반식민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여성 교육, 일부일처제, 아프리카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은 작은 지면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새로운 국가 정체성의 밑거름이 됐다. 저자는 거대한 이념보다도 이런 ‘생각의 인프라’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오늘의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소셜미디어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이스북과 X(옛 트위터), 디스코드 같은 플랫폼이 한때 혁명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깊이 있는 사유를 방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각적 반응과 바이럴 중심의 구조 속에서는 인내와 숙고, 신뢰 형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아랍의 봄’이 온라인 동원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지속 가능한 정치적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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