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자유와 감시' 여권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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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는 ‘이것’을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한 책자”라고 불렀다. 3000여 년 전 미라가 된 람세스 2세는 시신 상태로 1976년 프랑스 영토에 들어가기 위해 ‘이것’을 발급받았다. 이란 난민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1988년 ‘이것’을 도난당해 18년 넘게 샤를 드골 공항 1번 터미널에서 살았다.

‘이것’은 바로 여권이다. 여권은 오늘날 국경을 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의존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친숙한 서류다. 애리조나주립대 영어학 교수인 저자는 여권을 “단순한 여행 서류가 아니라 인간의 이동과 정체성을 정의하는 복합적인 사회적 메커니즘”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권이 ‘개인이 가진 이동의 자유를 실현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책은 여권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소개한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 정부를 비판하다 여권을 빼앗긴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캐나다 여권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외국인 취업 비자로 성공한 일론 머스크 등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여권에 얽힌 역사를 살펴보며 여권을 둘러싼 정체성과 이동성, 시민권과 국가권력, 지정학적 국제관계 등을 조명한다.

이처럼 여권은 ‘자유’와 ‘감시’라는 정반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세상에 여권만큼 명료하고도 역설적인 책자는 없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여권의 불균형과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여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권리와 침해와 배제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여행의 필수품으로만 여겼던 여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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