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상자에 담겨 배달된 동그란 피자를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미디엄 사이즈 피자는 몇 등분으로 나뉘어 있을까? 피자는 왜 대부분 8등분으로 나뉘어 있을까? 만약 피자가 8등분이 아니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8등분 피자’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편의가 모두 반영돼 나타난 결과다.
파는 사람에게 8등분은 자르기 쉽다. 원형 피자를 반으로 자르면, 1/2→1/4→1/8이 된다.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실수 없이 할 수 있다. 사는 사람에게도 8등분이 가장 먹기 쉽다. 손으로 잡기 쉽고, 입에 넣기도 쉽다. 2인 또는 4인 가족이 나눠 먹기 쉽고, 보기에도 좋다. 피자가 8등분인 이유는 모두에게 쉽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창조와 혁신은 사람들이 ‘하기 어렵다’라고 느끼던 것을 ‘하기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 사용하기 어려운 도구, 읽기 어려운 문장, 살기 어려운 집, 정리하기 어려운 물건 등을 쉽게 만들어주는 아이디어가 대박으로 이어졌다.
9월 말 일본에서 출간돼 화제인 <‘하기 쉽다’로 만드는 기술(しやすい」の作りかた)>은 오피스 가구업체 고쿠요(KOKUYO)에서 ‘워크 스타일 컨설턴트’로 일하는 시모지 칸야(下地 寛也)가 쓴 책이다. 고쿠요는 원래 ‘캠퍼스 노트’와 ‘심 없는 스테이플러’ 등으로 유명한 문구·사무용품 업체였으나, 스마트한 사무 환경을 목표로 공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저자는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어려운’ 것을 ‘하기 쉽게’ 만드는 기술과 전략을 소개한다.
식판은 밥, 반찬, 국 등을 올려놓기 쉽도록 오목하게 나뉘어 있고, 비즈니스 가방은 컴퓨터와 서류, 소품을 넣어두기 쉽게 주머니로 나누어져 있다. 넷플릭스 화면은 시청자의 취향에 맞춰 찾기 쉬운 순서대로 장르가 나뉘어 있고, 아마존 역시 고객의 관심사에 맞춰 구매하기 쉽게 배치되어 있다.
사용하기 어렵고, 찾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나누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쉽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잘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한다. 어려운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누는 기술’을 통해 삶을 쉽고 편하게 바꿀 수 있다고 전한다.
여전히 우리 일상 가운데는 ‘하기 어려운 것’이 넘쳐난다. 가사 일을 배분하기 어렵고, 설명서를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햄버거는 너무 커서 먹기 어렵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오타니가 친 공이 한눈에 홈런인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야구장이 필드와 외야 관중석을 구분하는 펜스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고, 하나의 회사가 여러 부서로 나뉜 이유는 그렇게 했을 때 일의 역할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고쿠요 히트상품 캠퍼스 노트가 대박을 터트릴 수 있었던 이유도 절묘한 행수로 나눔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쓰기 편하다’라는 인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은 ‘나누는 기술’을 잘 활용하면, 일상생활이나 일에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매끄럽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고정관념에 의문을 품고, 나눌 수 있는 틈새를 찾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안,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