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한낮에도 서울 명동 거리의 몇 배 넓은 대로가 인파로 가득찼다. 성별도 연령대도 국적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문객들이 오갔다. 스마트워치를 손목 위에 올려보고 인공지능(AI) 번역기를 써보거나 초소형 드론과 반려로봇을 카메라로 담는 풍경이 몇 시간이 흐르도록 계속 이어졌다.
중국 선전, '짝퉁성지'서 'AI 쇼룸'으로 변신
세계 최대 전자상가이자 중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 거점 중 한 곳인 화창베이 상권은 더 이상 '짝퉁성지'란 낡은 이미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드론·로봇·AI 스마트안경·AI 장난감·AI 스마트워치·AI 번역기·AI 학습기·AI 스피커 8대 AI 제품을 앞세운 '테크 핫플'로 탈바꿈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그대로 본딴 '짝퉁'만 쌓였던 매대는 AI 하드웨어를 보여주는 쇼룸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12일 중국 선전시 인민정부에 따르면 화창베이 전체 상품 구성 가운데 AI 제품 비중은 2023년 약 12%에서 올해 41%로 확대될 전망이다. 판매량, 성장 속도, 기술 수준, 소비자 반응을 기준으로 뽑은 8대 AI 품목은 방문객들 지갑을 노리고 있다. 올해 1~2월 관련 제품 매출은 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장난감은 200% 매출이 늘었고 드론이 90%, AI 스마트안경이 80%씩 증가했다. AI 스마트워치와 AI 번역기는 각각 40%씩 늘었다.
AI 8대 주력 상품, 성수기 판매량도 '급증'
화창베이에선 올해 들어 AI 제품군 판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드론, 로봇, AI 스마트안경, AI 장난감, AI 스마트워치, AI 번역기, AI 학습기, AI 스피커를 앞세운 'AI八骏'이란 새 간판도 달았다. 'AI八骏;은 'AI 여덟 준마'란 뜻이다.
화창베이가 내건 'AI八骏'은 일회성 순위가 아니다. 판매 데이터와 소비자 피드백을 반영해 운영된다. 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드론 제품은 춘절 기간 판매가 늘어난 뒤 배터리 지속시간에 관한 불만이 쏟아지자 곧바로 개선 작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는 화창베이에서 장기간 축적된 사업 방식 덕에 가능한 구조다. 화창베이엔 전문시장뿐 아니라 부품상, 완제품 조립업체, 물류·결제·검사·인증 서비스가 몰려 있다. 실제 35개 전문시장과 연간 4800억위안이 넘는 거래 규모가 형성돼 있다. 전자부품 시장만 해도 100만종이 넘는 부품을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전자부품 시장의 영업 면적은 약 17만7000㎡, 점포 수는 1만6000개가 넘는다. 오전에 설계하면 오후에 샘플이 나오고 다음 날 양산한 다음 1주 뒤 해외로 출하되는 속도전이 가능한 이유다.
화창베이는 올해 공개한 AI 하드웨어 글로벌 판매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속도전에 능한 면모를 강조하고 나섰다. 32개 판매 품목의 지역별 수요를 색상으로 표시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제시한 것. 어떤 나라에서 드론 수요가 높고, 어떤 지역에서 AI 안경이나 학습기 주문이 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전자상가가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수요를 읽고 제품 방향을 정하는 시장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만 85만명 '우르르'…AI 트렌드 '최전선'
해외 바이어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화창베이 거리에 있는 SEG전자시장 내 한 스마트워치 매장 직원은 "과거 해외 바이어들은 전자부품이나 부속기기들을 찾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는 보조배터리 같은 것들을 주로 사갔는데 요샌 바이어든, 관광객이든 AI 번역기나 작은 로봇, 스마트워치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춘절 성수기 기준 화창베이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75만명, 외국인 상인은 하루 7000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노동절 연휴엔 유동인구가 하루 평균 85만명으로 늘었다. 외국인 상인도 약 8000명이 찾았다.
현지에서 화창베이의 'AI八骏'을 시장 트렌드를 읽어낼 수 있는 신호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무엇을 사야 할지 보고, 바이어는 어느 품목이 어느 지역에서 뜨는지를 확인한다. 판매자들은 어느 시장과 체험 공간으로 고객을 보내야 할지 파악한다. 전통 전자상가가 AI 소비 트렌드 레이더처럼 작동하면서 실시간 테스트베드 역할을 동시에 맡는 구조다.
"AI 하드웨어 판매장이자 실험실"
화창베이의 변신은 중국 AI 산업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거대 AI 모델과 클라우드 경쟁력으로 경쟁한다면 선전 화창베이는 AI를 안경, 장난감, 드론, 번역기 등의 소비재로 침투시킨다. 성능이나 보안, 품질 편차가 여전히 과제로 꼽히지만 AI 하드웨어에 친숙한 사용경험은 강력한 내수시장을 뒷받침하는 잠재 성장 동력이 된다는 분석이다.
드론 제품을 시연하고 있던 한 20대 매장 직원은 "기존에 있던 도매상과 소매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소비자향 제품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양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크기만 한 전자상가라고 보기보다는 판매장이자 실험실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고 말했다.
선전(중국)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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