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폭발적 인기 끄는 ‘로마 달력’
사제복 차림이지만 실제 직업은 다양
美토크쇼에도 소개…짝퉁까지 등장
로마 역사 지구의 어느 기념품 가게를 들어가든, 할리우드 배우 맷 데이먼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은 젊은 성직자의 얼굴과 마주치게 된다. 그와 다른 12명의 남성은 공식적으로 ‘칼렌다리오 로마노(로마 달력)’로 알려진 이른바 ‘꽃미남 신부 달력’의 주인공들이다.
각 월별 페이지에는 이름 모를 신앙인들의 흑백 사진과 함께 바티칸 시국의 약국 이용법(유효한 처방전 필요), 시민권 취득법(출생으로 부여되지 않으며 매우 희귀함) 등 짤막한 정보가 담겨 있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올해로 출간 24년째를 맞이한 꽃미남 신부 달력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8~10유로 사이에 판매되며 이 달력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수백만 건의 조회수와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관광객들 사이에서 ‘컬트 기념품’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 고양이,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 로마 기념물, 섹시한 검투사 등 수많은 달력이 판매되고 있지만, 이 ‘로마 달력’만큼 지난 23년간 끊임없는 호기심과 추측을 불러일으킨 제품은 없다. 하지만 이 달력에는 치명적인 반전이 하나 있다. 바로 사진 속 남성들 중 실제 신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24년째 표지 모델, 정체는 39세 항공사 직원
이 달력은 2003년 베네치아 출신 사진작가 피에로 파치가 기획했다. 당시 그는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 로마의 신부 등 각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주제로 한 교육용 달력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달력의 구성과 표지 모델은 첫 출간 이후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 달력의 간판 얼굴인 지오바니 갈리지아는 파치의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불과 17세였다. 파치의 가족 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한 교회 앞에서 신부복을 입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약 23년이 흐른 지금, 39세의 항공사 객실 승무원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그는 수년간 달력 판매로 인한 로열티를 한 푼도 받지 못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애초에 파치와 합의된 사항이었으며, 두 사람 모두 달력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신비주의를 유지해 온 탓에 그를 둘러싼 온갖 루머도 무성했다.
사랑을 위해 사제복을 벗은 신부라거나, 조용한 삶을 사는 80대 전직 신부라는 로맨틱한 가설까지 등장했다. 갈리지아는 “성직자 모임에 나가본 적도 없고, 나는 절대 신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모델부터 자원봉사자까지… 2024년 밝혀진 진실
파치는 지난 2024년, 달력 속 신부들이 대부분 진짜 신부가 아니며 심지어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도 있다고 마침내 인정해 큰 화제를 모았다.
그에 따르면 사진 속 남성들은 대부분 모델이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일부는 파치가 스페인 세비야에 잠시 거주할 당시 종교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을 우연히 촬영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미국 유명 토크쇼 ‘스티븐 콜베어 쇼’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파장이 일었지만, 달력 판매량은 여전히 높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사진 속 남성들이 진짜 신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성 베드로 광장 근처에서 2013년부터 가판대를 운영해 온 마리알레티치아 딜라리오는 “사람들은 이 달력에 매료되어 있다. 관광객은 물론 실제 신부들까지 달력을 사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잘생긴 신부들을 어디 가면 볼 수 있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나도 안다면 당장 고해성사를 하러 갈 텐데, 내가 대기줄 첫 번째 죄인일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곤 한다”고 덧붙였다.
짭짤한 수익과 짝퉁 달력의 등장
2010년대 중반 전성기 시절, 이 달력은 매년 약 7만 5000부가 팔려나갔다.
18년째 가판대를 운영하는 모니룰 하크는 “매년 신부들의 얼굴은 똑같지만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재미로 달력을 사간다. 주고객은 여성이지만 남성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간 약 600부의 로마 달력을 판매해 왔지만, 2025년 들어 판매량이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새로운 경쟁자인 ‘칼렌다리오 그레고리아노(그레고리 달력)’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25년 처음 배포된 그레고리 달력은 로마 달력의 포맷을 그대로 베꼈다.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의 교회를 배경으로 이름 모를 미남 ‘신부’들의 사진을 월별로 실었다. 두 달력은 종종 매대에서 나란히 판매되고 있다. 하크는 2025년에 그레고리 달력을 약 400부 팔았으며, 이는 로마 달력 판매량을 앞지른 수치라고 전했다. 이에 원작자 파치는 그레고리 달력을 표절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갈리지아는 20년 넘게 자신을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 중 하나로 만들어준 이 달력의 열풍을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가 한때 교황님 달력보다 인기가 더 많았다는 게 상상이 되시나요? 살면서 누가 이런 말을 해볼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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