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거 보여드릴까요?” 함께 일하는 사진가의 스튜디오에서 AI의 힘을 재차 실감했다. 사진 촬영을 진행하다 보면 사진의 일부분을 수정할 때가 있다. 디지털상에서의 이미지 변환이지만 사람 손이 가는 일이라 많이 청하면 눈치가 보인다. 반면 AI로는 한순간이었다. 사진가는 마법 같은 과정을 보여주며 “저희 일도 없어질 것 같아요”라고 했다. 사진가들이 촬영하던 이미지가 이제는 AI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지금 마트에서 판매하는 중저가 화장품의 거품 이미지나 모델 이미지는 상당 부분 AI로 제작한 것이다.
상용화된 AI는 이미 사무직 전 영역에 스며들었다. 엄정한 정확도가 필요 없는 초벌 번역, 자료 출처를 명확히 쓸 필요가 없는 원고 작문의 경우 AI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여기서의 실력 지표는 속도. 인간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양의 산출물이 몇 초 만에 나온다. 말하자면 막내 직원에게 시킬 법한 일을 AI가 아주 잘하고 있다. AI별로 특기가 다르니 퍼플렉시티, 클로드, 챗GPT 등 각자 다른 AI에게 각기 다른 과업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상관없고, 어쩔 수도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일하던 회사와 내가 만들던 정보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걸 너무 많이 봤다.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고 시대를 읽지 못한다면 밀려날 수밖에 없다. ‘기계가 만든 콘텐츠는 가짜’라는 주장도 조금 어색하다. 어차피 인간의 창작물은 상당수 재현이다. 회화의 근본 역시 풍경의 재현이다. 인간이 재현하면 진짜고 기계가 재현하면 가짜라는 논리는 불공평하지 않은가.축소되는 업계에서 일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에서 피처 에디터라는 일을 오래 했다. 생활 영역에서의 좋은 것과 흥미로운 요소들을 긴 페이지로 소개하는 일이었다. 한국에 패션 잡지가 가장 많을 때 일을 시작해 여러 변화를 겪었다. 그사이 에디터의 세대와 업의 종류가 변하면서 매체가 줄어들고 일자리가 사라졌다. 반면 남아 있는 매체와 에디터들도 있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세계에서 만개한 회사와 개인도 있다. 이런 곳에서 일하다 보니 변화는 상수이지 변수가 아니다.
이른바 ‘좋음’을 소개하는 일을 해온 입장에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가짜와 복제가 많아질수록 진짜가 빛난다. 유명 브랜드의 모조품이 아무리 많아지고 정교해져도 정품의 인기는 더욱 올라간다. 인류 회화의 걸작을 모두 디지털로 열람할 수 있어도 세계적인 미술관은 언제나 붐빈다. 지브리 스타일로 이미지를 바꿀수록 지브리라는 이름은 더 유명해진다. 그러니 AI 시대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진짜가 되면 된다. 그게 어려운 게 문제라서 그렇지.
박찬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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