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보다 실물경제' 트럼프 반박한 WSJ "증시가 곧 경제" [김인엽의 매크로 디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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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트 美 재무장관 연일 "증시 조정은 건강"
월스트리트저널 반박 "주가 하락으로 침체 온다"
자산가치 감소 시 소비 줄어드는 '자산효과' 근거
"S&P500 20% 떨어지면 美 성장률 0.8%P 하락"
미시간대 소비자 심리지수는 28개월만에 최저치
제조업체들도 "관세가 오히려 미국 경쟁력 해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암호화폐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FP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암호화폐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AFP

"조정은 건강하고 정상적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좋은 세금, 규제 완화, 에너지 안보 정책을 시행한다면 시장은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베선트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연일 증시 조정이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4일 "월스트리트는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메인 스트리트(제조업)에 집중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같은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러한 베선트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의 주식시장 조정은 경기 침체의 잠재적 징후 그 이상이며 실제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WSJ이 이러한 주장을 펴는 근거는 바로 '자산 효과'입니다. 이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보유자산의 실질가치가 높아지면 소비 지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가브리엘 초도로프-라이히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2021년 주식 가치가 1달러 증감하면 소비가 0.03달러 변동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5일자(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2면에 게재된 '경기 침체의 초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기사의 도표들. 왼쪽부터 워싱턴DC에서 줄어든 미국 신용·체크카드 소비, 증가하는 카드 연체 가능성, 확대되는 중소기업 불확실성 지수, 컨퍼런스콜에서 줄어든 '연착륙' 언급, 급증하는 일자리 감축 폭과 연방 정부 직원의 실업수당청구건수를 나타낸다. WSJ

15일자(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2면에 게재된 '경기 침체의 초기 징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기사의 도표들. 왼쪽부터 워싱턴DC에서 줄어든 미국 신용·체크카드 소비, 증가하는 카드 연체 가능성, 확대되는 중소기업 불확실성 지수, 컨퍼런스콜에서 줄어든 '연착륙' 언급, 급증하는 일자리 감축 폭과 연방 정부 직원의 실업수당청구건수를 나타낸다. WSJ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미국 경제 호조가 자산 효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S&P500 지수가 24% 오르는 등 미 증시가 랠리를 펼치지 않았다면 미국 소비자지출 증가율이 3%가 아닌 2%에 그쳤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반대로 증시가 하락하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됩니다. 매튜 루체티 도이체방크 미국 수석 경제학자는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위해 대략적인 달러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주식 하락으로 인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면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지출을 줄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미국에서는 소비 둔화가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됩니다. 도이체방크는 미국 증시가 올해 20% 하락할 경우 소비자지출이 1.2%포인트 감소한다고 전망했습니다. 소비가 미국 경제의 약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은 0.8%포인트 감소한다는 게 도이체방크의 계산입니다. 초도로프-라이히 교수 역시 증시가 20%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이 약 1%포인트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인들의 주식 사랑은 주식 등락에 따른 자산효과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 가정의 금융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4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소득 상위 10% 가구의 경우 순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6%에서 2022년 32%로 늘어났습니다.

미국 가정의 금융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4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9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주식 비중이 높은 만큼 주식 등락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극대화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미국 가정의 금융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4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9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주식 비중이 높은 만큼 주식 등락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극대화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이미 경제 지표들은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미시간대가 발표한 소비심리지수는 57.9로 예상치인 63.1을 크게 밑돌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쭉 하락세이며 2022년 11월 이후 최저치입니다. 지난 1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0.9% 감소했는데 이는 1년10개월만에 최대 폭입니다. 델타항공, 풋로커는 물론 잭다니엘 위스키 제조업체인 브라운포먼 등은 실적발표에서 소비자 심리 위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년 4개월만에 최저치 기록한 미국 미시간대 소비심리지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2년 4개월만에 최저치 기록한 미국 미시간대 소비심리지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증시가 부진하면 기업들의 투자 의욕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나스닥 지수가 약 33% 하락한 2022년 이후 미국 기술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 및 비용 감축에 나섰습니다. 필 서틀 서틀이코노믹스 창립자는 "(이전까지) 인공지능(AI)에 1000억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기업가치는 몇 배 늘어났지만, 이는 이제 중단될 수 있으며 데이터센터 및 발전소 등 신규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증시가 랠리를 펼친 2023~2024년 늘어난 신규 투자가 급격히 쪼그라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하는 대로 관세 정책이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가능하게 할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세계 각국에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관세가 미국의 제조 경쟁력을 해친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주 셔츠 제조업체인 갬버트 셔츠메이커의 미치 갬버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 중국에 10% 관세를, 중국이 (단추에) 8%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단추 가격이 18% 올랐다"라며 "2월 이후 주문한 단추 5000개의 비용이 5400달러 올랐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탈리아, 한국 중국 등에서 원단을 수입하기 위해 그간 캐나다 운송회사를 이용했지만, 트럼프 관세 발표 이후 캐나다 회사가 운송 비용 요금을 33% 올려 주문을 모두 취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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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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