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간 위에 나를 그리니 공백의 세월도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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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간 위에 나를 그리니 공백의 세월도 작품이 됐다

재미 작가 이지현 개인전
중세 기도서 필사를 통해
이방인의 고독·불안 담아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지현 작가. 이향휘 선임기자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지현 작가. 이향휘 선임기자

예일대가 있는 미국 뉴헤이븐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희귀 필사본을 소장한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이 있다. 창문 하나 없는 화강암과 대리석 외벽 안에는 자연광이 차단된 공간에 중세의 기록들이 잠들어 있다.

2010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지현 작가(47)는 이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청교도들이 정착한 이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역사를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중세 필사본 '시도서(時禱書)'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달력과 시계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게 계절별로 해야 할 일들을 기록했을까요. 그것도 아름다운 세밀화와 함께 말이에요."

작가는 별자리 이름으로 표시된 계절을 따라 필사를 하며 시공간을 넘어 소통하기 시작했다. 중세 농민들의 일상이나 귀족들의 풍경이 있던 자리에 자신의 기억과 삶의 궤적이 담긴 장소들을 겹쳐 그려 넣었다. 이방인으로서 겪는 소외와 불안, 아이와 함께 만들었던 인형의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생생하게 담았다. 이 결과물을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4년 만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 '몽환서: 소란한 공백'에서 만날 수 있다.

갤러리 3개 층에서 펼쳐지는 신작 22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층은 '시도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신화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3층에는 정원 등의 풍경이 기하학적 패턴과 겹친다.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받은 입체적 구조들이 평면 회화 위에 중첩된다. 4층에선 생천(광목천)에 그려진 즉흥적인 기록으로 솔직한 일기장과도 같다.

작가는 "가장 리얼한 장면을 그린다는 건 그림이 리얼해서가 아니라 제 상태가 리얼하기 때문"이라며 "뭔가가 해결됐다면 그림을 안 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 그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러브콜이 쏟아졌다. 이민 초기 임신과 출산 속에서도 두산 레지던시와 아라리오 뉴욕 분점에서 전시를 이어갔지만, 한국 분점들의 잇따른 철수로 공백기를 겪기도 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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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헤이븐의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에서 중세 필사본 '시도서'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지현 작가는 개인전 '몽환서: 소란한 공백'을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한다.

그의 전시는 1층, 3층, 4층으로 나뉘며, 각 층은 개인의 기억과 신화, 기하학적 패턴, 즉흥적인 기록을 주제로 한 22점의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지현 작가는 "가장 리얼한 장면을 그리는 것은 제 상태가 리얼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전시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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