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중 한 대가 중국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이 같은 발언으로 미국과 네덜란드 관계가 악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는 즉각 “그럴 리 없다”고 해명하면서도 2019년 이후 7년째 이어진 미국의 ASML 장비 수출 통제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6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주 전 러트닉 장관은 EUV 장비 중 한 대가 중국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ASML 경영진에게 전달했다. EUV 장비는 빛으로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정에 활용된다. 빛의 파장이 직전 세대인 심자외선(DUV) 장비보다 ‘15분의 1’ 수준으로 짧아 회로를 더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 2019년 미국은 EUV 장비를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첨단 공정의 필수품으로 보고 대중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네덜란드 정부와 ASML은 “EUV 장비 총 340대(폐기 26대 포함)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으며, 중국엔 단 한 대도 없다”고 밝혔다.
최신 EUV 장비는 높이 4m, 길이 15m로 가격은 약 6000억원이다. 일부 부품이 협력사를 통해 중국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지만 통째로 들어갔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때문에 러트닉 장관이 장비 수출 통제를 확대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압박한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2024년 10월 EUV보다 한 단계 아래로 평가받는 DUV 장비 중 최신 모델의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의회는 ASML의 DUV 장비 판매를 완전히 차단하고, 중국에서 가동 중인 DUV 장비 수백 대의 정비 서비스와 부품 공급을 제한하는 법안(MATCH)을 발의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DUV 장비를 활용해 EUV에 필적하는 수준의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 DUV 장비 매출은 지난해 ASML 전체 매출(326억유로)의 33%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쇼르드 쇼르드스마 네덜란드 통상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MATCH 법안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미국 법을 네덜란드 및 동맹국 기업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6일부터 4일간 중국을 방문하며 ASML 최고경영자(CEO)를 대동하는 등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ASML 출신으로 구성된 중국 엔지니어 팀이 올해 초 EUV 장비 시제품을 완성해 선전의 한 연구소에서 시험 중이다. 중국 정부 목표는 2028년부터 자국산 EUV 장비를 반도체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당장 완벽한 EUV 기술을 보유할 수는 없겠지만 10년을 놓고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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