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전부처럼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너지고 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우주, 무중력의 공백에 홀로 내던져진 것처럼 아득한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비명조차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그 막막한 허공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구의 증명>의 주인공 '담'은 죽은 연인의 시체를 씹어 먹었다. 연인을 제 몸속에 각인시키려는 충격적이고도 처절한 애도의 의식에 곁들일 만한 와인은 생고기와 피의 향기를 담은 '코르나스'다.
죽은 연인을 영원히 살아 있게 하는 방법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이가 죽은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절박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연인 '구'와 '담'은 세상의 변두리에서 돈과 빚, 지독한 가난에 쫓기며 서로를 유일한 안식처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구'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자, '담'은 그를 세상의 망각 속에 내버려 두는 대신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기억하기로 결심한다. 죽은 연인의 머리카락, 손톱, 살점 하나하나를 입에 넣어 삼킴으로써.
내 손을 꼭 쥐고 나의 방향을 가늠해주던 구의 손과 팔. 그것을 뜯어먹으며 나는 절반쯤 미쳤다. 완전히 미치지는 않기 위해 나를 때리며 먹었다. 내 볼을, 눈을, 내 사지를 때렸다.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똑똑히 보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최진영, <구의 증명> (은행나무, 85쪽)'담'이 '구'를 먹는 행위는 가장 절박하고 숭고한 방식의 애도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인 애도가 고인을 세상 밖으로 서서히 밀어내는 '떠나보냄'의 과정이라면, 이 소설의 애도는 연인을 자신의 우주 안으로 영원히 편입시키는 '떠나보내지 않음'을 향해 있다. '담'은 '구'를 삼킴으로써 그의 존재를 자신의 숨결과 박동 속에 박제한다. 시체는 부패하고 사라지지만, 내 몸속으로 받아낸 연인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된다.
피와 생고기의 야생적 풍미를 담은 와인
소설을 읽으며 느껴지는 '비릿한 슬픔'을 미각화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와인은 프랑스 북부 론 지방의 시라(Syrah)다. 화강암 토양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 나는 시라는 잘 익은 검은 과실 향 뒤에 피와 철분의 향기를 품게 된다. 그중에서도 야생적인 풍미의 정점을 찍는 곳은 단연 코르나스다. 북부 론의 남쪽에 위치하는 코르나스는 오직 100% 시라로만 와인을 만든다.
코르나스의 저명한 생산자 중 하나인 프랑크 발타자르가 100년 넘은 고목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샤이요'는 야생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응축한 와인이다. 이 와이너리는 와인을 만들 때 포도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통째로 발효해 탄닌뿐 아니라 특유의 비릿하면서 알싸한 풍미를 더한다. 병에 담기 전 찌꺼기를 걸러내는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세한 효모와 포도 입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입안에서 굴리면 마치 생고기를 씹는 듯한 농밀함과 원초적인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묵직한 코르나스 한 잔은 갓 도축한 고기의 비릿함과 서늘한 철분 냄새, 으깬 후추의 알싸함을 들이밀며 우리를 <구의 증명> 속 처절한 식육의 장면으로 끌어당긴다. 죽은 연인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자신의 몸속에 각인시키려는 '담'의 절박한 사랑을 증명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페어링은 없다. 검붉은 혈액처럼 농밀한 액체를 마시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증명'의 목격자가 된다.
상실의 맛을 그리움의 근육으로 치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법은 슬픔 아래로 영영 침잠해 있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비릿한 슬픔마저 피와 살로 바꾸어 내, 내일을 살아낼 근력을 얻는 일에 가깝다. '구'를 잃고 깜깜한 우주에 홀로 남겨진 ‘담’이 선택한 길은 결코 자포자기의 무너짐이 아니었다. 연인이 남긴 마지막 흔적을 자신의 일부로 소화시켜, 그의 존재를 나의 생명으로써 증명하겠다는 가장 능동적이고 강인한 애도의 길이었다.
책장을 덮고 마지막 잔을 비워내도 샤이요가 남긴 서늘하고도 묵직한 여운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100년의 세월을 버틴 고목의 뿌리가 내준 진한 액체는 이제 피가 되어 몸 구석구석을 돌게 될 것이다. 그새 비릿한 상실의 맛은 단단한 그리움의 근육으로 치환된다. '담'이 삼켰던 '구'의 조각들이 그녀가 다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이 되었듯,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잔 속에 남겨진 누군가의 추억을 머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더는 어둠 속에 젖어 있지 말자. 무너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야말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머물 수 있는 단 하나의 안식처이므로. 가슴 깊은 곳에 그를 위한 방 하나를 마련하고, 다시금 한 걸음씩 내디뎌 보자. 오늘을 살아가는 발걸음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의 기억이야말로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하는 영원한 동행이 될 것이다. 당신의 강건한 한 걸음 한 걸음에 진심으로 건배를 보낸다.
신연수 기자

17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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