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중심이 돼 창립한 ‘재미조선문화회(The Korean Culture Society)’ 발기문의 일부다. 오늘날엔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쓸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해외에서 조선인은 ‘미개인’으로 인식됐다. “조선은 세계 문명의 일대 동량이고 초석”임을 확신했던 유학생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통탄스러웠을까.
이 유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벌인 ‘조선도서관’ 설립 운동의 실상이 밝혀졌다. 컬럼비아대 소장 문서 등을 조사한 이혜은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서지학연구’에 실린 논문 ‘1930년대 미국 유학생 단체 在美朝鮮文化會(재미조선문화회)의 도서관 운동’에서 “오늘날 북미 한국학 연구의 중심 기관이 된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도서관의 뿌리에 이 유학생들이 벌인 도서관 설립 운동이 있다”고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재미조선문화회 활동의 중심이 된 건 뒷날 미군정청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1900~1979)이었다. 이 대학에서 공부 중이던 그는 총장에게 조선도서관의 설치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 임시 공간을 배정받았다.문제는 장서였다. 대학 주요 도서관인 ‘세스 로 도서관’ 건물의 넓은 방을 차지하기 위해선 다양한 장서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정부가 기증한 장서가 적지 않았다. 중국은 1902년 ‘고금도서집성’ 5044권을, 일본은 1927년 5000권을 기증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 청년들은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재미조선문화회는 초기 300~1000책 규모의 도서를 수집해 기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노력은 태평양을 건너 조선에도 전해졌다.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1931년 뉴욕 방문이 계기가 됐다. 유럽을 경유해 뉴욕에 도착한 인촌 선생은 6월 5~7일 뉴욕한인교회에서 열린 북미유학생총회 동부지역대회에 참석했다. 이철원은 귀국한 인촌에게 “조선의 책은 두께가 얇아 서장이 채워지지 않으며 구입하기에는 비용이 부족하고 뉴욕 내 우리 책들은 다 가져다 놓았다”며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기도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5 days ago
12

!['김사랑 닮은꼴' 24기 옥순 "외모 지적? 아 미친X" 대놓고 저격[스타이슈]](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4/2026042016253471378_1.jpg)

![[Mind Note] ‘어중간’은 어쩌면 ‘유연성’이 아닐까?!](https://pimg.mk.co.kr/news/cms/202604/20/news-p.v1.20260420.cd121be203fb45b98ee159796431c7c0_R.jpg)
![[공식] 비, 24년만 첫 도전..5월 11월 가수 컴백](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4/2026042016031554643_1.jpg)

![공개 열애 2달만 바람 폭로..박지민 "미련 없다" 쿨한 고백[스타이슈]](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4/2026042016100333460_1.jpg)
![고운 욕이 더 무섭다 [말록 홈즈]](https://pimg.mk.co.kr/news/cms/202604/20/news-p.v1.20260417.3b96bdabe37440cda053547b0f51518c_R.jpe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