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말 믿고 투자한 죄…에쓰오일·한화·풍산 등 1兆 못돌려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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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말 믿고 투자한 죄…에쓰오일·한화·풍산 등 1兆 못돌려 받아

“내년 투자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짜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경기 침체에 건설비 상승으로 부담이 큰데, 약속했던 세금도 안 돌려주니….”

18일 한 에너지 관련 기업 관계자는 임시투자세액공제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지난해 도입한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올해도 적용한다는 정부 말을 믿고 투자를 상당폭 늘렸다”며 “이미 수천억원 넘게 투자했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매년 조(兆)단위 투자를 계획해온 이 기업은 친환경 공장 투자 규모를 줄이는 등 신사업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임시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이 무산되자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당초 예정한 투자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는가 하면, 국내에 세우려던 사업장을 해외로 돌리는 방안을 따져보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

○ “투자·재무계획 다시 짜야 할 판”

18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연장되지 않으면 석유화학과 정유, 방산, 식품기업을 중심으로 올해만 1조1658억원의 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집계됐다. 3년 간 추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3조6239억에 달한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은 에쓰오일(샤힌프로젝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탄약추진체 공장 증설), 풍산(방산 공장 증설), 농심(라면 수출 전용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2조원 이상을 투자한 에쓰오일은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기업들도 투자금액에 따라 세금 부담이 수십~수백억원 늘어난다.

상당수 기업은 투자 재검토에 들어갔다. 수출용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한국에 공장을 지은 한 식품업체는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이 끝나는 것을 전제로 당초 계획한 시설 확장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다른 제조업체도 국내 공장 대신 유럽 공장을 확장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산업용 전기료가 10%가량 오른 상황에서 임시투자세액공제마저 사라지면 한국에 공장을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당초 기대한 경제 활성화 효과도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2023~2025년 적용할 경우 국내총생산(GDP)과 소비는 각각 0.31%, 0.42%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투자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제조업 투자가 통상 2~3년 단위로 이뤄진다는 걸 고려하면 3년 정도의 세액공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 경제도 타격 받을 듯

지역 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임시투자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대형 투자 지역은 대부분 비수도권이다. 에쓰오일은 울산에 대규모 석유화학 시설을 짓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충청), 풍산(울산·부산), 농심(부산), 효성중공업(경남 창원), 하림(전북 익산)의 투자 지역도 모두 지방이다. 한 대기업 회계부서 임원은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지역 일자리에도 치명타가 된다”고 말했다.

업계는 다음달 임시국회에선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3월에는 기업의 회계처리가 완료돼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한이 지나면 소급적용도 불가능하다. 경제 4단체는 국회를 찾아 임시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야당 일부 의원들은 대기업을 임시투자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임시투자세액공제액 1조1658억원 가운데 9308억원(79.8%)이 대기업 몫인 만큼 이 제도의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투자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 투자 과정에서 파생되는 하청업체들의 시설 투자”라며 “투자 활성화라는 제도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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