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년간 한국 축구계를 이끌어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HDC그룹 회장)이 물러난다. 오는 2026 북중미 월드컵 폐막 직후 협회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감독 선임 논란과 정부의 징계 압박으로 ‘리더십 리스크’가 커지는 가운데,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두고 축구 민심 수습책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 13년만에 막내린 ‘정몽규 체제’
정 회장은 29일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성명을 내고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대표팀이 본선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지원하는 게 협회장으로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사퇴 시점은 월드컵 폐막 직후인 오는 7월 19일로 확정됐다.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며 닻을 올린 ‘정몽규 체제’는 이로써 13년 만에 막을 내린다.
이번 사퇴 결단은 추락한 신뢰와 정부의 거센 압박이 맞물리며 조직을 이끌 동력을 잃은 결과다. 정 회장은 지난해 2월 논란 끝에 4선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투명한 의사결정, 행정 난맥상이 거듭 도마에 올랐다. 그 결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퇴출 선고나 다름없는 ‘중징계’ 처분 요구를 받기에 이르렀다.
◇ 행정소송 1심 패소가 결정적
최근 법적 다툼에서 패소하면서 조기 퇴진을 앞당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 측은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버티기에 나섰지만, 지난달 23일 1심에서 패소해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축구 팬들의 사퇴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사법부마저 등을 돌리면서 회장직을 유지할 명분이 빛이 바랬다. 정 회장 스스로도 이번 성명에서 “협회를 맡아 운영하는 동안 여러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이 모든 사안은 전적으로 제 부덕의 소치”라고 고개를 숙였다.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월드컵 본선이 가까워지자 정 회장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북중미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전폭적 지지와 응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협회 수장을 향한 팽배한 불신과 사퇴 요구가 국가대표팀에 대한 응원 열기마저 차갑게 식게 했다. 결국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수장 스스로 거취를 명확히 해, 대표팀으로 번지는 부정적인 여론을 차단하기 위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 회장은 성명서 말미에 “월드컵 기간 우리 국가대표 선수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뜨거운 응원을 보내줄 것을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월드컵 이후에는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분이 힘과 지혜를 한데 모아, 한국 축구가 다시 한번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며 쇄신을 기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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