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있게 우울했다…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한 한재민의 '비장한 음악' 요리법

1 week ago 12

1일 서울 예술의전당 루체른 심포니 협연
엘가 첼로 협주곡...우울함 간직하되 취하지 않아
악단,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으로 객석 호응 이끌어
공연 시작과 끝 모두 춤곡...들뜬 초여름 분위기 살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 첼리스트인 한재민(20)이 올해로 창단 221주년을 맞은 스위스의 루체른 심포니와 한 무대에 섰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에서 이들이 함께 연주한 작품은 영국인 작곡가 엘가가 나이 예순둘에 낸 첼로 협주곡. 이제 막 20대의 길에 들어선 청년 연주자가 폭발보다는 절제가 어울리는 곡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심사였다.

절제있게 우울했다…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한 한재민의 '비장한 음악' 요리법

루체른 심포니의 내한은 2023년 이후 3년만. 그때처럼 이번 방한에서도 미하엘 잔데를링이 지휘봉을 잡았다. 2021년부터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그는 동독의 명지휘자였던 쿠르트 잔데를링의 아들이다.

2011~2019년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를 맡으면서 안정적인 지휘 실력을 입증 했던 그는 예술의전당 관객들에게 선보일 첫 곡으로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를 골랐다. 산뜻하면서도 힘찬 춤곡으로 단번에 초여름의 들뜬 분위기를 표현하기 좋은 선택이었다.

긴장, 소멸시키지 않고 잡아뒀다

서막에 해당하는 춤곡 연주가 끝나자 나비넥타이와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한재민이 나타났다. 담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엔드핀을 고정한 뒤 바로 첼로를 켰다. 그는 비극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를 내면서도 우수에 과하게 취하진 않았다.

꿋꿋이 소리를 내놓으며 언제나 약간의 추진력을 유지했다. 악단은 무대 오른편 앞에 첼로를 놓는 미국식 배치로 현의 음역별 입체감을 더했다. 잔데를링은 협연자의 첼로보다 앞서지 않고 그의 다이내믹(음량 조절 흐름)에 맞춰가며 한재민이 주연으로 오롯이 빛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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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변화가 두드러지는 2악장에선 한재민의 절제된 트레몰로(활을 빠르게 반복해 움직이며 한 음을 떨듯 내는 기법)가 돋보였다. 짧은 순간 고음을 벼려낼 땐 고뇌의 불길에 휩싸인 듯하다가도 트레몰로에선 번뇌를 묵묵히 감내하는 중생을 보는 듯한 차분함이 있었다. 첼리스트가 회상에 잠기는 3악장에선 악단 현악기들이 솔리스트와 같은 온도로 연주의 감정을 풀어내며 공명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협응력이 전제된 연주였다.

마지막 4악장을 시작할 땐 첼로와 조응하는 플루트가 조금 튀었다. 다만 서로 긴밀하게 박자를 맞춰가며 완급을 조절하는 데선 무리가 없었다. 악단은 독주자가 쌓은 긴장을 확 터뜨려 소멸시키는 대신 적당한 긴장감을 꾸준히 남겨두며 마지막에 쏟아낼 에너지를 모았다.

한재민의 연주도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첼로와 투쟁하기보다 자신이 늘 입던 옷을 입은 것처럼 일체감 있게 악기를 소화했다. 1악장 시작과 같은 선율로 첼로가 수미쌍관을 이루자 악단은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도 힘찬 총주로 대미를 장식했다. 레시피를 따라 잘 차려진 맛깔난 음악에 마지막 킥(차별화 요소)이 얹혀진 듯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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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의 현악기 소리, 둥그렇고 힘찼다

협주곡 연주를 마친 한재민의 앙코르는 악단 현악기 수석들과 함께 연주하는 엘가 ‘사랑의 인사’였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할 때 자주 나오는 곡이다. 한재민의 첼로 소리는 화려하거나 설렘이 가득한 쪽은 아니었다. 수줍음이 섞인 씩씩함에 가까웠다. 엘가가 아내에게 약혼 선물로 바쳤던 곡임을 고려하면 작곡 배경과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관객들의 끝 모를 박수를 받은 한재민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방드로 첼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으로 공연 1부를 마쳤다.

2부에선 루체른 심포니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악단 연주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교향곡 차례가 되자 루체른 심포니만의 둥글고 힘찬 현악기 음색이 도드라졌다. 1악장의 현들은 힘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둥글게 말아 올린다는 느낌으로 소리를 키웠다. 악기별로 등장하는 목관도 총주와 어우러져 부드러운 결이 있었다. 잔데를링은 악기별 음량을 균형감 있게 배분하면서 꼭 필요한 상황에만 강세를 더하려는 듯했다.

절제있게 우울했다…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한 한재민의 '비장한 음악' 요리법

2악장은 둥그런 현악기 소리가 여전히 인상적이었지만 금관의 울림이 뻗지 못하는 인상이 있었다. 전반적인 소리가 응집되지 못하고 벌어지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3악장에선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크진 않지만 확실한 보잉으로 비장감을 이어가며 음악 전체에 탄탄한 기반을 깔았다. 현악기들의 둥근 소리는 4악장에서 트롬본과 튜바의 힘찬 울림을 돋보이게 하는 대조 효과를 냈다. 교향곡이 끝나자 가득 찬 객석에서 열정적인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 호응에 해맑은 웃음을 보이던 악단의 단원들은 앙코르로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8번,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을 차례대로 연주했다. 이날의 첫 곡과 마지막 곡이 모두 춤곡이란 점이 뜻깊었다. 초여름에 들어선 관객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준 선곡이었다.

절제있게 우울했다… 루체른 심포니와 협연한 한재민의 '비장한 음악' 요리법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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