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올해 전후(戰後) 80주년을 맞았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과제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야스쿠니신사를 마주하는 법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다카이치 사나에, 고이즈미 신지로 등 유력 후보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신사에 모인 영혼은 대부분 근대 일본을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요시다 쇼인(1830~1859년) 등 에도 막부(1603~1868년) 말기 사상가를 시작으로,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 영혼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전쟁 전에는 육·해군 관할이었으나, 전후 GHQ(연합군 총사령부)가 정교분리를 요구함에 따라 종교법인이 됐다. 신사에 대한 공적 지원이 사라지면서 참배만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전후 히로히토 일왕은 수년마다, 요시다 시게루 등 역대 총리들은 종종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상황이 변한 것은 1978년이다. 야스쿠니신사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교수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7명을 몰해 합사(合祀)하면서다. 이 7명은 위령 대상이 전사자라는 원칙을 벗어남에 따라 ‘쇼와 순난자’라는 새로운 묶음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79년 A급 전범이 합사됐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도조 등을 신격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파문이 일었다. 이후 히로히토 일왕은 참배하지 않았고, 왕위를 계승한 이후 상왕은 물론 일왕도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합사를 납득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히로히토 일왕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자 자민당 보수파는 충격을 받았다. 합사를 통해 전쟁을 정당화하려 했으나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에 떠오른 것이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공식 참배다. 총리의 사적 행위였던 참배를 정부 공적 행사로 격상하면, 일왕 참배만큼은 아니더라도 도조 등의 복권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나카소네는 이듬해인 1986년에는 공식 참배는커녕 사적 참배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공식 참배는 A급 전범에 대해 예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우리나라가 표명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 우호 결의에 대한 오해와 불신마저 생길 우려가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총리가 참배했으나,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매년 참배한 것은 고이즈미뿐이었다.
차기 자민당 총재이자 일본 총리 유력 후보인 다카이치 사나에는 줄곧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패전일인 지난달 15일에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작년 9월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갔던 다카이치는 총리에 취임하더라도 야스쿠니신사에 평소처럼 참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선에서 이시바 시게루에게 졌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았다. 자민당 내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국가를 위해 순직한 분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독일 등도 국가가 전몰자를 위령하고 있으며, 그와 같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빠진 부분이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노이에 바헤’는 세계대전 전몰자와 학살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위령 대상이다. 독일군 일반 병사는 포함되지만, 침략을 주도한 아돌프 히틀러는 대상이 아니다. 독일 대통령이나 총리는 매년 노이에 바헤를 방문하지만 오해받을 염려는 없다.
일본 우익들은 “일본의 전쟁은 아시아를 백인 지배에서 해방하기 위한 성전(聖戰)이었다. 사후에 만든 규칙으로 심판한 도쿄재판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보수파 대표였던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의 행위는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반성을 나타냈다. 다만 그는 사죄를 다음 세대에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해결책은 A급 전범의 분사(分祀)뿐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과거 전쟁 지도자를 포함하지 않는 위령이라면 외교적 마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조 등을 분사하고, 야스쿠니신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라 사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장병만 위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아베 전 총리도 분사를 생각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전 자민당 부총재는 저서 ‘냉전 이후 일본 외교’에서 아베 전 총리가 일본유족회장을 역임한 고가 마코토 전 자민당 간사장과 관련 논의를 모색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실현되기 전인 2022년 아베 전 총리는 선거 유세 중 총격 사망했다.
작년 별세한 일본 보수 언론계의 거두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주필도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2014년 월간지 ‘문예춘추’에 기고한 글에서 “A급 전범이 분사되지 않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권력자는 공식 참배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현재 자민당 내에선 작년 중의원, 올해 참의원 선거에서 신흥 정당에 뺏긴 보수층 표를 되찾기 위해 우경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다카이치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득표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외교에는 엄청난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