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문제는 이들이 입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원 후 이전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장기 치료나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고령층에게 인플루엔자는 단순한 독감이 아니라 삶의 기능과 독립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질환에 가깝다. 실제로 2020년 기준 전체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의 83.1%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독감 예방 정책은 여전히 ‘얼마나 많이 접종했는가’에 머물러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을 시행 중인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층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률이 80%를 웃돈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고령층은 여전히 중증으로 악화해 입원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기존 표준용량 백신의 예방 효과는 65세 이상 고령층에서 13.5% 수준에 불과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령층은 면역 기능도 노화돼 젊은층과 같은 백신을 맞아도 면역 반응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접종 숫자가 아니라 예방접종이 실제 입원과 합병증, 중증 진행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느냐다.해외 주요국에선 이미 고령층 특성을 고려한 예방접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더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고면역원성 백신을 중심으로 예방 전략을 전환한 것이다. 고용량 백신을 도입한 미국, 영국, 호주 등은 65세 이상 고령층의 예방 효과가 42∼55%로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올해부터는 일본, 대만 등 한국과 고령화 수준이 유사한 아시아 국가들도 고면역원성 백신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국가예방접종에 고면역원성 백신을 도입하는 것을 백신 예산 증가 등 단순히 비용 부담 측면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질병 예방 효과와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고령층 인플루엔자는 입원 치료비뿐만 아니라 재활 치료, 장기 요양, 보호자 돌봄 부담 등 사회 전반에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 2024년 기준 65세 이상의 건강보험 진료비는 50조 원을 돌파해 전체 진료비의 44.9%를 차지했다. 예방에 대한 적절한 투자는 중증화와 입원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고령자 의료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고령층 예방 정책은 단순한 접종률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경제, 의료, 문화 등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다른 선진국처럼 감염병 예방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환자의 삶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 의료체계의 부담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선택이다.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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