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역 발전을 위해 좋은 시설은 들어왔으면 하고, 기피 시설은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철도 지하화는 “해달라”, 매립지나 변전소는 “나가라”고 외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를 두고 지역 이기주의가 심하다며 혀를 차기만 해서는 해결되는 게 없다.
최근 전력망 확대를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전력이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하남시와 한전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하남시는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시설인 변전소 증설을 두고 한전과 소송전까지 갈 조짐이다.
하남시가 앞서 증설에 동의해놓고 태세 전환을 한다는 논란도 제기되지만 본질은 전력시설에 대한 주민 반대다. 하남시 외에도 전남 장성·보성·영암·영광, 강원 횡성·홍천, 충남 당진, 경기 시흥 등 여러 곳에서 전력망 건설이 주민 반대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 같은 갈등으로 송전망 건설이 계획보다 10년 이상 늦어진 곳이 있을 정도다.
모두 보상을 더 해달라고 주장하지만 한전은 그럴 수 없다. 일단 보상 한도가 법에 정해져 있어 주민 요구대로 맞춰주면 배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수백조 원 부채를 짊어진 형편이라 보상해줄 돈도 부족하다.
공기업인 한전보다 협상력이 나은 중앙정부가 나서 주민들과 보상 문제를 협의하고 정부 재정과 전력기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논의되고 있다. 특히 하남시를 지역구로 둔 추미애 의원은 500m 안에 거주하는 주민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전력시설을 지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전력망 구축이 시급한 상황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사전 동의 획득을 의무화한다는 것인데, 현실성은 떨어진다. 다만 당사자인 주민들의 발언권을 강화해 논의를 촉진한다는 발상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과거처럼 밀어붙이기식 건설을 할 게 아니라면 합당한 보상의 범위와, 기피시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비과학적인 괴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를 충분히 논의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보상을 현실화할 수단도 필요하다. 정부와 주민, 지자체가 자주 머리를 맞댈수록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홍혜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