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진의 AI시대 스토리노믹스] 〈1〉프롬프트가 된 플롯:생산 주기가 무너진 자리

4 days ago 16

전대진 前 스토리위즈 대표 소설 한 편이 독자를 만나기까지 평균 1년이 걸리고, 웹툰 IP 하나를 세우려면 1년 6개월이 넘는다. 소재를 찾고, 세계관을 세우고, 캐릭터를 만든 다음 한 회씩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손으로 하는 일이다. 그 사이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독자는 더 빨리 더 자주 읽고 싶어 하는데 작가는 매주 마감에 쫓긴다. 플랫폼은 신작을 더 빨리 내놓으라 하고, 작가는 이미 한계까지 밀려 있다. 이 시차가 이 산업의 오래된 숙제였다. 지금 세대 독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새 회차를 확인하는데, 그 리듬을 못 맞추면 이탈은 순식간이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들어왔다. 오탈자를 잡고 배경을 칠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획부터 유통까지 이어지던 순서 자체가 무너졌다. 기획 다음에 집필, 집필 다음에 연재였던 공정이 이제는 동시에 돈다. 가장 크게 바뀐 곳은 기획이다. 장르와 키워드, 타깃만 넣으면 로그라인 수십 개가 몇 초 만에 나오고, 설정이 어긋나거나 이야기가 늘어지는 구간도 잡아준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리던 시놉시스 회의가 이제는 초안을 앞에 놓고 시작한다. 몇 주 걸리던 일이 실시간이 됐다. 무한 연재와 빠른 호흡을 원하는 글로벌 팬덤 앞에서 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현장은 다르다. 만드는 시간을 10분의 1로 줄였다고 해서 값이 10배 오르지는 않는다. 여기에 스토리노믹스의 역설이 있다. 생산 공정이 빨라진다고 흥행 공식이 바뀌는 건 아니다. 여전히 좋은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 사이의 간극이 승부를 가른다. 오히려 원고가 많아질수록 그 간극은 더 잘 보인다. 빨라진 만큼 더 많은 이야기가 시장에 쏟아지고, 그 안에서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은 더 희소해졌다. 필자는 이걸 숫자로 겪었다. 스토리위즈에서 확보한 웹툰과 웹소설 IP가 1000개쯤 됐는데, 그 중 영상으로 만들 만하다고 판단한 것은 100개 남짓이었다. 열에 하나다. 원천을 많이 갖는 것과 가치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웹소설과 웹툰을 오래 다루다 보면 이야기 하나가 통과하는 관문이 여러 개라는 걸 알게 된다. 연재 반응, 편집자 판단, 플랫폼 노출, 마지막으로 영상 제작사의 선택. 관문마다 걸러지는 비율은 조금씩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다. 관문이 많아질수록 남는 이야기는 줄어들었다. 케이툰과 블라이스, 두 플랫폼을 함께 운영하면서 그 흐름을 계속 지켜봤다. 원고는 늘어도 좋은 이야기가 그 만큼 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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