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서울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두 명이 무단이탈한 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사실 무단이탈 사고는 예고된 일이었다.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이 제조업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임금보다 낮게 책정되면서 “이럴 거면 다른 일하지 뭐 한다고 가사관리사 하겠느냐”거나 “차라리 불법체류자로 식당 일을 하는 게 더 낫겠다” 같은 회의적인 반응이 제도 도입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이탈자들이 정말 임금 불만으로 작정하고 무단이탈한 건지는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탈과 불만은 분명 또 불거질 것이다.
● 돌봄 부담 줄여? 12년째 부족한 아이돌봄 지원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은 육아 가정의 돌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 등 외국에서 돌봄 인력을 들여와 활용함으로써 육아 가정의 양육 비용 부담을 경감한다는 것이다.
맞벌이, 한부모 육아 가정 입장에서 돌봄 비용이 부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없는 시간 쪼개 이모님 면접을 보고, 고심 끝에 모신 이모님이 그만두신다면 절망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멘탈이 탈탈 털려 ‘요샌 이모복(福)이 오복(五福)’이라며 탄식하는 이유는 돌봄이 그저 가격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줄어 두 명도 잘 낳지 않는 시대에 갈수록 더 금지옥엽이 되어갈 자녀를 위해 저렴한 돌봄을 들이고픈 부모가 앞으로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물론 돌봄 수요는 다양할 수 있다. 사정이 어려워서 저렴한 돌봄을 이용할 수밖에 없거나, 영어 등 목적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원하는 집도 분명 있는 게 사실이다. 후자라면 굳이 외국인 돌봄 인력을 저렴하게 만들어서 들여올 일은 아니다. 가사관리사의 다양성을 키우는 차원에서 현 가사관리사 시장에 외국인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될 일이다. 그럼 언어와 교육에 특화된 더 우수한 인력이 들어올 수 있다.
돌봄 비용이 부담인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면 제발, 딴 거 하지 말고 이미 있는 제도부터 개선하시길 바란다. 어느덧 15년이 된 아이돌보미 지원사업은 여전히 인력, 지원 모두 충분치 않다. 아직도 돌보미가 부족해 줄을 서야 하는 지역, 시간대가 있고, 지원금도 예산 한정 탓에 특정 소득 이하 가정만 받을 수 있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부끄럽지만) ‘애국자’ 소리 듣는 아이 넷 엄마 기자도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해 매달 월급의 60~70%를 아이돌보미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담당 부처에서 예산을 확대해달라고 계속 개선안을 올리고 있지만 잘리고 거부되길 수 차례다. 이래 놓고 갑자기 비싼 돌봄 탓을 하며 저렴한 외국인 돌보미를 들여오자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아이돌보미 예산 자를 때는 비싼 돌봄이 문제가 아니었던가.
● 최저임금 차등, 장기적으로 국내외 인력 질 악화시킬 것 값싼 돌봄이 최저임금이란 벽에 가로막히자 정부와 서울시는 최저임금 차등화까지 들고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을 뒤집어엎는 일이다. 최저임금 차등화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가장 큰 쟁점이자 노사 간 해묵은 갈등 사안이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특정 직군, 특정 국적부터 트고 볼 일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애써 증진한 가사관리인력의 권리와 위상은 또 어떤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측이 이유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국내 가사관리 인력의 지속적 감소, 고령화인데 가사관리 인력이 계속 줄고 고령화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처우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사관리사 하면 과거 ‘식모’나 ‘파출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년의 지인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 아이돌보미 등 가사관리 일자리가 어떠냐고 추천하는데, ‘나이 들어서 왜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느냐’는 식의 부정적인 답을 받을 때가 많았다. 이런 인식은 그동안 가사관리 인력의 일도 일이지만 급여가 너무 낮았던 데서 기인한다.
이미 국내 민간업체 가사관리 인력의 상당수가 중국 동포로 채워지며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낮은 급여는 국내 가사관리 인력의 임금과 지위를 더 열악하게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건 가사관리 인력 지원자를 더 줄어들게 할 것이고 인력 감소는 인력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 여성이 하던 무급 노동, 外여성이 싼값에…‘여성=육아’ 인식 강화 우려
최근 가사관리사의 최저임금 차등화에 동의한다는 한 정치인이 쓴 칼럼을 읽었다. 우리나라 필리핀 가사도우미 임금은 홍콩의 3배다, 싱가포르에서도 필리핀 도우미가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함으로써 여성이 커리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작을 도울 수 있는 변화다…. 가사관리사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철저히 우리 출생아 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역할만 풀어놓은 걸 보고 이것이 국민을 대표해 입법을 책임진 사람의 생각이라는 데 실망과 뜨악함을 금할 수 없었다.
돌봄 인력이 누구고 어떤 처우를 당하든 아이만 잘 낳아 기를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난 세월 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을 가정으로 내몰았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지상목표를 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던 여성들이 개인의 꿈을 포기했고, 그들이 무급으로 봉사한 가사와 육아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었다. 작금의 여성들이 그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출산을 거부하고 있는데, 나라와 지자체는 ‘그럼 그 고된 일을 다른 여성에게 시킬게’라며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있다. 이게 모순적이라는 걸 정녕 그들은 모르는 걸까.육아휴직자가 늘고 육아기 단축근로 이용자도 서서히 늘고 있다고 하지만 육아휴직 이용자 70%, 단축근로 이용자 90% 이상이 여성이다. 여전히 여성이 육아의 상당 부분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값싼 여성 인력에 육아를 전가한다는 발상은 언제든 힘든 상황이 오면 다시 엄마가 그 짐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
● 다양한 선택지 좋지만 저렴하겐 안된다
돌봄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뿐인데 뭘 그리 예민하게 생각하냐고, 너무 앞선 걱정이니 일단 좀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주는 건 좋다. 대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겠다는 생각은 접어주길 바란다. 그런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걸 최근의 이탈 사태가 보여주었다. 장기적으로 국내 돌봄 시장과 문화에 악영향이 될 가능성도 높다.
다행인 건 지금이 본사업이 아닌 시범사업 기간이라는 점이다. 부디 정부와 서울시가 빨리 문제를 깨달아주길 바랄 뿐이다. 저렴한 돌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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