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이종섭 지시 받아적은 ‘해병대 부사령관 메모’ 근거로 부당명령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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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사건’ 朴대령 무죄 판결문 보니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된다’… 李 前국방, 용산과 통화 2시간뒤
정종범등 불러 사건 처리 방향 회의… 판결문에 대통령-VIP 5번 언급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와 발언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2025.1.9/뉴스1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와 발언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군 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적용했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2025.1.9/뉴스1
군사법원이 9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의 메모를 결정적 근거로 보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확보한 A4용지 37쪽 분량의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채 상병 사건 관련 해병대 수사단이 작성한 수사 보고서의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특별한 이유 없는,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 전 부사령관의 메모를 그 이유로 들었다. 앞서 채 상병이 지난해 7월 19일 수색 작업 도중 사망하자 해병대 수사단은 이를 조사했다. 같은 해 7월 31일 오후 2시경 이 전 장관은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할 회의를 열었고, 정 전 부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나온 이 전 장관의 지시 사항을 메모했다.

메모에는 이 전 장관이 정 전 부사령관에게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된다”, “사람에 대해 조치하면 안 된다”, “경찰에 필요한 수사 자료만 주면 된다”, “수사 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부터 해야 한다” 등의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원은 이 같은 증거 등을 종합해 이 전 장관의 이첩 중단 명령은 “수사 보고서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당시 이 전 장관은 회의 약 2시간 전인 오전 11시 54분경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후 정 전 부사령관 등을 호출해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채 상병 수사에 대한 대통령실 차원의 외압 가능성을 암시하는 정황이란 평가가 나온다. 법원이 이를 ‘부당한 지시’의 배경으로 인정한 것은 대통령실의 개입 가능성을 일부 적시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법원은 실제 ‘VIP(윤석열 대통령을 의미) 격노’가 있었는지, 대통령의 개입이 외압으로 작용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판결문에서 ‘대통령’과 ‘VIP’를 합쳐 총 5번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첩 보류 지시의 배경으로 “대통령께서 ‘도대체 이런 걸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관련자 진술도 언급했다. 채 상병 사고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의 격노가 이 전 장관과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을 거쳐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및 중단 지시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심 법원이 이 전 장관의 이첩 중단은 부당한 명령이고, 배경에 ‘대통령 격노가 있었다’는 관련자의 진술을 언급한 만큼 ‘VIP 격노설’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수사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선 이 전 장관 등 군 수뇌부에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해졌고,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할 수 있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수처 안팎에선 윤 대통령이 현재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피의자로 입건된 만큼 군 수뇌부 조사부터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구민기 기자 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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