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환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교수-3도 화상 이현정 씨
아침 준비하다 가스 불 옮겨붙어… “얼굴 주변 화상 치료 특히 어려워”
3차례 피부 이식에도 고통 그대로… 한여름에도 흉한 목 감싼 채 외출
건강 복합조직 이식받고서 ‘반전’… 당김 증세-흉터 모두 크게 개선돼
2019년 9월이었다. 오전 6시경 주부 이현정 씨(53)는 부엌으로 향했다. 남편과 딸의 출근 시간에 맞춰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국을 데우기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식탁 준비 등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잠옷 자락이 휘날리며 가스 불을 스쳤다. 불이 잠옷에 올라탔다. 곧이어 이 씨의 어깨와 목을 넘어 머리까지 삽시간에 번져 갔다.
딸이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이 씨가 다급하게 두 손으로 옷자락에 붙은 불을 껐다. 불은 금세 꺼졌다. 얼핏 보기에 큰 화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화상 치료 전문 A 병원으로 향했다. 이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투병 기간이 그토록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도 화상, 소독부터 ‘죽을 만큼의 고통’
1도 화상일 때는 피부가 붉게 변한다. 화상 부위가 따끔따끔하다. 물집은 별로 생기지 않는다. 햇볕이 강할 때도 1도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증세가 가볍다면 해당 부위를 식혀 주고 보습제를 바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처치를 할 수 있다. 증세가 심하면 진통제를 먹는 것으로 치료될 때가 많다.
2도 화상은 표피 안쪽 진피층까지 손상된 상태다. 물집이 여러 개 잡힐 때가 많다. 진피층 깊은 곳까지 손상됐다면 심부 2도 화상 진단을 받는다. 피부 상태가 상당히 나빠진다. 물집이 터지면서 얼룩덜룩한 모양새가 된다. 이 씨는 A 병원에서 심부 2도 화상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부상 정도는 더 심했다. 나중에 이 씨의 추가 수술을 담당한 김연환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재건복원센터장)는 “이 씨는 3도 화상에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3도 화상은 진피층을 넘어 피하 지방층까지 손상된 상태다. 피부 이식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 씨는 3도 화상에 준해 치료를 받았다.A 병원 진단 결과 화상은 옆구리부터 어깨, 목까지 광범위했다. 물집도 심하게 잡혀 있었다. 피부 이식 수술을 당장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진행하려면 물집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딱지가 생겨야 한다. 좀처럼 상처 부위는 단단해지지 않았고 흐물거렸다. 이 때문에 입원 초기에는 상처 부위를 소독(드레싱)하기만 했다.
거즈를 떼고 붙일 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왔다. 통증은 드레싱을 끝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4시간 내내 아팠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진통제를 달고 살았지만 통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이 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시기였다. 정말 치료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두 손에도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병원에서 알게 됐다. 불을 끄려고 두 팔을 휘젓다가 화염에 노출된 것이다. 손에 입은 화상은 심하지 않아 머잖아 회복됐다. 사고 당시 연기를 삼키는 바람에 목구멍이 막혀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이 또한 곧 회복됐지만 이 씨의 ‘고통 지수’는 점점 커져만 갔다.
● 3회의 수술에도 큰 호전 없어
이 씨는 3개월 동안 A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 정도 피부가 안정되자 피부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상처 부위가 워낙 커서 수술은 두 차례 했다. 1차 수술은 입원 한 달 후인 10월, 2차 수술은 11월에 시행됐다. 명함보다 얇은 두께로 허벅지 피부를 절개해 어깨와 목에 이식했다.수술은 잘 된 것 같았다. 상처에서 진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염증 악화를 막은 데는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목과 어깨 주변 관절 및 근육이 위축되고 움직이는 범위가 줄어드는 구축 증세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목 근육이 약해져 목이 자꾸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때마다 당김 현상이 심했다. 두 차례 수술 후에도 구축 증세는 그대로였고 통증은 여전했다. 수술 부위는 얼룩덜룩했고 흉터로 가득 찼다. 이 씨는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내 몸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12월 이 씨는 퇴원했다. 외래 진료를 이어갔지만 믿음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이 씨는 다른 병원을 물색했다. 2020년 2월, 이 씨는 B 병원에서 다시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머리 뒤쪽 피부를 떼어 내 이식했다.
3회의 피부 이식 수술 후 의료진은 더 이상 치료법이 없다고 말했다.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을 뿐, 구체적인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씨는 열감이 느껴지는 수술 부위를 얼음찜질할 뿐이었다. 뭘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흉터가 보일까 봐 한여름에도 외출할 때 스카프를 둘렀다. 온몸이 수술 상처로 가득해 대중목욕탕에는 가지도 못했다. 점점 더 우울해졌다. 그런 이 씨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이 벚꽃 거리로 데려갔다. 팔과 목이 드러난 예쁜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 씨는 “처음 3개월은 그래도 회복될 것이란 희망이 있었는데, 이 무렵에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유리피판술’ 시행 후 확 달라져
2020년 4월, 이 씨는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큰 기대감은 없었다. 그러다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이 씨에게 “흉터를 더 줄이고 구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피부만 이식한 앞선 세 차례 수술은 화상 치료의 대표 방식이다. 다만 이 씨는 화상 범위가 넓고 깊어, 피부 이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부위 조직을 되살리는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때 김 교수가 제안한 것이 ‘유리피판술’이었다. 단순히 표피 조직만 이식하는 게 아니라 진피층과 피하지방, 혈관 같은 복합조직을 한꺼번에 이식해 잘 정착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구축 증세가 심한 목 부위부터 유리피판술을 진행했다. 왼쪽 옆구리에서 복합조직을 떼어 내 오른쪽 목에 이식했다. 옆구리에는 허벅지에서 떼어낸 조직을 채워 넣었다. 이런 수술은 보통 8시간 남짓 걸린다. 이 수술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김 교수의 경우 3시간 정도 소요됐다.
목 부위 구축 증세는 크게 개선됐다. 이어 미용 목적이 가미된 수술을 3회 더 진행했다. 일종의 미세 조정 수술에 해당한다. 턱선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귀 뒤쪽에서 피부를 떼어 내 이식했다. 다음에는 흉터가 덜 보이도록 지그재그로 성형 수술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식받은 부위가 두툼해진 걸 해결하기 위해 지방층을 제거하는 수술도 시행했다.
그해 12월에는 어깨 부위 구축 증세를 해결하기 위해 2차 유리피판술을 시행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복합조직을 떼어 내 어깨에 이식했다. 마찬가지로 옆구리에는 허벅지 피부를 이식했다. 이후로는 1차 유리피판술과 비슷한 절차로 미세 조정 수술을 3차례 진행했다.
이 모든 수술은 지난해 11월 끝났다. 사고 발생 5년 만이었다. 김 교수는 “관절이 상했다면 더 큰 문제가 있었을 텐데, 다행히 관절은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모든 수술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제 웃을 수 있어요”
목과 어깨에는 당기는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궂은 날씨에는 증세가 더 심해진다. 그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더운 여름에도 목에 둘러야 했던 스카프와는 이별했다. 수술 흉터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가족도 안정을 되찾았다. 이 씨의 우울한 느낌도 줄어들었다.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됐다. 이 씨는 “사고 전으로 100%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80% 이상 만족한다. 의료진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수술 과정에서 생긴 흉터는 추가 재건 성형으로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상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만족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자존심 회복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재건 성형이 필요한 경우는 상당히 많다. 다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다소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김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보면 얼굴 주변 화상 사고 상당수가 가스 불에 의한 것이었다”며 “이런 화상의 경우 처음에는 상처 부위가 살짝 붉어 보이기만 하지만 점점 깊어져 치료가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상 사고는 미리 막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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