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두 곳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 아원고택, “한옥은 움직이는 정원”
“오후 4∼5시 체크인 시간을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손님들 안전과 어둠이 내리기 전 아원 풍광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아원고택 측이 미리 보내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이해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종남산(終南山)은 그 자체로도 가슴을 뻥 뚫리게 했지만, 해가 산 위로부터 서서히 하강하면서 정원의 네모난 수경(水鏡) 위를 비추는 풍광은 마음속에도 빛을 가득 채웠다.
아원고택은 2019년 그룹 BTS가 머물며 제작한 ‘2019 썸머 패키지’에 소개되며 글로벌 ‘BTS 힐링 성지’가 됐다. 오랜 세월이 그려낸 기와 꽃, 그날그날 수반에 띄워 두는 들꽃, 호수 같은 수조에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나무 그림자, 대나무 산책길의 새 소리…. 이곳의 디테일은 고요하고 느리게 걸을수록 하나둘 눈, 귀, 마음에 들어선다. 아원은 ‘우리들의 정원’이란 뜻이다.
● 아가페정원, 무조건적 사랑이 이룬 숲 정원
3층 갈색 벽돌 건물에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2년 전까지 아가페정양원장이었다가 정년퇴직하고 이제는 이 노인복지시설의 정원인 아가페정원만 집중해 맡는 최명옥 원장이 말했다.
“서정수 신부님이 1970년 이곳을 세우면서 아가페정양원(靜養院)이라는 말을 붙였어요. 고요하게(靜) 쉬면서 무조건적 사랑(아가페)을 나누자고요. 아가페정양원 원훈(院訓)도 ‘가족으로 살자’에요. 처음엔 몰랐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려면 가족처럼 살아야 하더라고요. 서 신부님이 1985년 선종(善終·성직자의 경건한 임종)한 후로는 박영옥 이사장님(92)이 지금껏 정양원을 가꿨어요.”
현재 50명의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사는 아가페정양원은 11만5700㎡(3만5000평) 부지가 온통 숲이다.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나무를 키워 팔아 왔다. 내장산에는 단풍나무, 부잣집들에는 향나무를 팔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1만 그루 넘는 나무가 남아 있고, 그중 향나무는 3000여 그루다.50여 년 동안 ‘비밀의 숲’이던 이곳이 2021년 아가페정원으로 문을 열게 된 건 정헌율 익산시장의 공이 컸다. 정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 아가페정양원을 찾아가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치유 받도록 오래된 숲을 정원으로 조성해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아가페정양원 박 이사장은 장고(長考) 끝에 무료 개방을 결정했다. 팬데믹으로 갈 곳 없어진 시민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나누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원 측이 최근 2년 간 향나무 아래 심었다는 각종 계절 꽃이 곧 너울댈 것이다. 봄에는 수선화와 끈끈이대나물, 여름에는 맥문동과 샤스타데이지, 가을에는 상사화…. 일부 식물 조합은 낯설었지만 구수한 느낌이 있었다. 겨울에 일손이 부족해 미처 뽑아내지 못했다는 시든 토종 맨드라미, 마른 채 가지에 달린 튤립 모양 백합나무 꽃은 각각 땅과 하늘에 쓴 시(詩)였다. 최 원장이 말했다. “정원을 다녀간 분이 고맙다고 연락하셨어요. 요즘 봉선화를 보기 어려운데 우리 정원에서 실컷 보니 어릴 적이 생각나 행복했다고요.” 정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마저 살갑게 구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은 오랜 세월의 사랑이 깃든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치유’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요즘 이 두 곳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바라보고 챙기게 하는 치유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챙김 과정은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가슴속에서 어떤 열정이 깨어나 꿈틀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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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중심축이다. 미륵사는 백제 30대 무왕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콘크리트로 덧씌워졌다가 긴 복원 과정을 거쳐 2019년 지금의 모습을 찾았다. 출토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된 모습이 마치 ‘돌의 정원’ 같다. ◇왕궁리 유적 백제 궁궐터로 왕궁리 오층석탑 등이 있다. 유적을 걷다 보면 뜻밖에 백제의 정원을 만난다. 당시 정원 중심시설과 역 ‘U’ 자형 대형 수로를 볼 수 있다. 백제왕궁박물관 옥상 하늘정원은 유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비밀의 정원’이다. |
글·사진 완주·익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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