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조선은 불바다가 됐다. 200년을 이어온 조선 왕조의 기록, 조선왕조실록도 불탔다. 하지만 실록의 명맥은 이어질 수 있었다. 미리 여러 부를 찍어 전국 각지의 사고(史庫·기록 보관소)에 '분산 보관'한 덕분이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은 전주사고에 남은 실록을 다시 찍어 다섯 곳에 나눠 보관했다. 훗날 한양의 춘추관본이 소실된 뒤에도 산속의 네 부는 살아남았다.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완벽히 보존된 역사서 중 하나로 남은 비결이다.
살아남은 네 사고의 '성종실록'이 420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박물관이 국립고궁박물관과 협력해 오는 8월 30일까지 여는 특별전 '조선의 기록과 문화, 만세(萬世)에 전하노니'에서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 의궤' 등 조선 왕실 유물 190여 점이 나왔다.
실록·어진, 세계유산위원회에 공개
이번 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가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이 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다. 사상 처음으로 실록의 네 판본을 한자리에 모은 건 이번 회의를 위해 부산을 찾는 196개국 관계자 3000여 명에게 조선 기록유산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선의 기록문화를 다룬 전시 1부에서는 성종실록 네 부와 함께 개국 직후 처음 편찬한 '태조실록' 첫째 권(국보)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에서도 살아남아 제작 후 500년 넘는 세월을 버틴 전주사고본이다.
임금의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御眞)이 전시 2부의 주인공이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창덕궁 신선원전에 있던 어진 48점은 부산 동광동 부산국악원 창고로 피란했다. 하지만 1954년 12월 용두산 화재로 어진 대부분이 불타거나 훼손됐고, 남은 어진은 서울로 옮겨졌다. 이 어진들이 다시 부산을 찾은 건 화재 이후 70여 년 만이다.
1861년 그린 철종 어진(보물)은 공작 깃털을 꽂은 전립에 금박 용보를 단 군복 차림이다. 화면 위 '내 나이 31세 때의 초상(予三十一歲眞)'이라는 글씨는 철종의 친필이고, 화폭에는 그날 불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조 어진(보물)도 나왔다. 이 밖에 창덕궁과 창경궁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 그린 국보 '동궐도' 등이 함께 걸렸다.
조선의 창, 부산
3부는 조선 대일(對日) 외교의 창구였던 부산을 조명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은 1609년 기유약조로 일본과 국교를 다시 텄다. 대신 일본인의 내륙 출입을 막기 위해 외교와 무역 창구를 동래부(현재 부산) 한 곳으로 묶었다. 오늘날 용두산공원 일대에는 약 10만 평 규모의 일본인 거주지 초량왜관이 들어섰다. 동래 출신 화가 변박이 1783년 왜관 전체를 내려다보듯 그린 '초량왜관도', 동래부사가 일본 사신을 맞아 잔치를 베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10폭 병풍 '동래부사접왜사도'가 그 시절을 증언한다.
부산은 조선통신사가 배를 띄운 곳이기도 했다. 1811년 통신사를 수행한 화원 이의양의 그림 등 부산박물관이 소장한 세계기록유산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함께 걸렸다. 신의를 뜻하는 '성신(誠信)'을 내건 이 외교는 조선 후기 200여 년 한·일 평화의 기반이 됐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8월 3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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