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채의 여인숙.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네.
기쁨, 우울, 옹졸함,
잠깐 스쳐가는 깨달음이
뜻밖의 방문객으로 찾아오네.
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슬픔의 무리라 하여
네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가구를 몽땅 없애버린다 해도,
그 손님을 정중히 대하라.
그는 어쩌면 너를 비워내고
새로운 기쁨을 들이려는 것일지 모른다.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악의,
그들을 문간에서 웃으며 맞고
집 안으로 초대하라.
무엇이 찾아오든 고마워하라.
모두가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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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인간을 “한 채의 여인숙”이라고 표현합니다. 여인숙은 나그네를 받는 곳이지요. 주인이 손님을 마음대로 골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열어줘야 합니다. “기쁨”이 찾아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울”과 “옹졸함”, “슬픔”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이런 감정은 문을 잠근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문을 두드리고, 벽을 흔들고, 잠을 깨웁니다.
그래도 루미는 “그 모두를 환대하고 맞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슬픔의 무리”가 가구를 부수고 집을 난폭하게 휩쓸어도 “정중히 대하라”고 합니다. 그 손님이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역설은 고대의 지혜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낯선 손님은 신의 얼굴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크세니아(ξενία, 영어 xenia)’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의 ‘환대’는 사적인 친절이 아닌 공적인 질서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주인은 손님에게 방문 이유를 묻기 전에 음식과 잠자리, 목욕 시설과 휴식을 먼저 제공해야 합니다. 손님은 주인에게 공손해야 하고, 주인의 호의를 받되 과다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되며 떠날 때는 주인에게 답례해야 합니다.
이런 관습은 철학에서도 발현됩니다. 노예 출신으로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가 된 에픽테토스는 “일이 네 뜻대로 되기를 요구하지 말고,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는 그대로 되기를 바라라. 그러면 삶이 순조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체념’보다 ‘조정’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요. 바깥 사건은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방식, 즉 해석과 반응의 문은 다를 수 있습니다. 루미가 문간에서 “웃으며 맞으라”고 할 때의 문도 결국 그 문이지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더 직접적인 교훈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너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너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깨달아라. 그러면 힘이 생길 것이다.” 그는 “방해가 진전이 되고, 길을 막던 것이 길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루미의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가구를 몽땅 없애” 버리는 손님은 스토아식으로 말하면 ‘장애물’입니다. 이때 스토아 철학은 장애물을 치우는 데 집착하지 않고, 장애물을 대하는 마음의 그릇을 키웁니다.
성경 히브리서 13장 2절에 “모르는 사이 천사를 대접했다”는 내용이 나오지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이웃이나 손님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것이 천사를 대접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손님이란 단지 들어왔다 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메시지 자체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환대하는 장면은 더 생생합니다. 아브라함은 장막 어귀에서 세 사람을 보자마자 달려갑니다. “물을 가져오게 하여 발을 씻고, 나무 아래에서 쉬게 하라… 내가 먹을 것을 가져오겠다.” 여기서 물과 휴식과 음식은 환대의 방식이면서 천사를 맞이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손님이 먹는 동안 아브라함은 그 곁에 서서 함께합니다.
손님들은 “내년 이맘때 아들을 줄 것”이라는 약속을 남깁니다. 극진한 환대가 미래의 문을 연 것이지요. 낯선 손님이 축복의 전달자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루미는 “그는 어쩌면 너를 비워내고/ 새로운 기쁨을 들이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시구로 표현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날마다 벌어집니다. 슬픔과 분노, 어두운 생각과 악의가 찾아왔을 때 이를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맞받아치면 우리의 감정은 더 야만적으로 변합니다. 그 손님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고 정성껏 집에 들이면, 그때부터 삶의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손님을 고를 수는 없겠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슬픔이 집을 난폭하게 휩쓸고 간 자리에서 우리는 집이 허물어진 게 아니라 불필요한 가구가 치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예전과 다른 형태의 기쁨, 더 단단해진 생각, 더 새로워진 희망이 깃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루미가 말한 “인도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문 앞에 서 있는 그 감정의 얼굴이 곧 “저 너머로부터 온/ 인도자들”이지요. 그러니 “그들을 문간에서 웃으며 맞고/ 집 안으로 초대하라.// 무엇이 찾아오든 고마워하라”고 루미는 거듭 강조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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