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혁신당 이주영 국회의원과 대한암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병용요법의 암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암 환자 260만 명인 시대, 65세 이상 국민 6명 중 1명이 암 환자인 상황을 고려해 생명과 직결된 혁신 신약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최신 항암제 트렌드인 병용요법 급여와 관련된 제도적 한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항암제 병용요법이란 두 개 이상의 항암치료제를 함께 투여해 치료 효과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완치 가능성까지 높이는 치료법이다. 현재 개발되거나 허가되는 항암신약 10개 중 7, 8개는 항암제 병용요법으로 알려져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기자는 이처럼 혁신적으로 암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암 치료 방법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이를 대처하는 정부 방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내내 불편했다.
암 치료는 1차 치료제를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효과가 떨어지면 2, 3차 치료제로 순차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래도 1차 치료제는 부작용이 많지만 보험급여로 인해 비용이 저렴한 항암화학요법이 대다수를 이룬다. 2, 3차로 갈수록 효과가 뛰어난 고가의 항암제를 사용한다. 처음부터 효과가 좋은 고가 항암제를 사용하면 나중엔 사용할 항암제가 없다는 게 정부 논리다.이날 토론회에서 병용요법의 보험급여가 저조한 이유와 관련해 정부 측은 “치료 초기 단계에서 신약 병용요법을 사용하면 치료 효과가 좋게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데 1차에 좋은 약제들을 다 쓰게 되면 2차에서는 기존 항암화학요법을 써야 하고, 3차에는 급여되는 약이 없다”고 했다. 이에 현장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단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순차적 치료의 가장 큰 맹점은 모든 환자가 다음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증 항암치료제는 대부분 전이성인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다. 예를 들어 전이성 요로상피암(방광암) 환자의 약 50%는 2차 치료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중간에 암이 진행되거나 사망하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자인 김인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임상의 입장에서는 초기에 좋은 약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다음 단계를 위해 앞에 좋은 약제를 안 쓴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임상시험은 이를 다 감안해서 통계학적 분석을 한다”면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며, 치료 차수(1차, 2차, 3차)를 유지하기 위해 현존하는 최선의 병용요법을 제한하는 것은 환자 생존의 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령 전이성 방광암 등 요로상피암 환자가 내원했을 때 파드셉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면 기존 항암화학요법 대비 생존 기간을 2배 이상 연장한다는 획기적인 데이터가 발표됐지만, 국내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그림의 떡인 셈이다. 고가의 치료비로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도 많다.이 의원도 “현재 국내 급여 기준으로는 임상적으로 유용한 병용요법 치료제를 초기에 사용할 수 없어 환자들의 불만이 크다.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초기 치료에서 환자들에게 보다 유연한 선택권을 제공해야 한다”며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업무 방향이 개선되기를 희망해 본다”고 말했다.
이날 병용요법과 관련한 가장 큰 화두로 기존 건강보험 혜택을 받던 항암제에 신약을 병용하면 두 치료제 모두 비급여로 전환되는 문제, 서로 다른 제약사의 신약 병용요법을 급여화하기 위한 절차가 미비한 문제가 주로 거론됐다. 최근 10년간 국내에는 70건 정도의 항암제 병용요법이 허가됐으나 제약사가 상이한 신약 병용요법은 대부분 비급여인 상황이다.
해외는 이미 병용요법 급여 적용을 위한 제약사 간 협의를 허용하는 등 유연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영국은 ‘안전지대(Safe Harbor)’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약사 간 가격 협상을 허용하고, 벨기에는 정부와 제3자 기관이 개입하는 다자간 협상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항암 병용요법의 급여 적용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급여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복지부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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