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본질 상기시켜준 “몸조심” 협박
탄핵결과 초조감과 야수적 정치DNA 결합물
尹은 보이면 보일수록 보수 지지율 떨어뜨려
친윤 옹위 환상 벗고 그림자속 머물러야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무시했거나, 의원 체포·구금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복잡할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합법과 불법, 헌법상 권한과 위헌의 미세한 갈림길을 수없이 오간다. 문제성 발언·지시들 중에도 면밀히 계획된 것인지 우발적·즉흥적인 것인지 경계에 있는 것들이 많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대통령 개인의 잘못을 처벌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부통령제가 없는 우리 시스템에선 대통령에게 투표한 1639만 표를 무효화시키고, 국민의 나라 방향 선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국제 질서의 펀더멘털이 바뀌는 관세전쟁 상황에서 불확실성·불투명성의 장기화는 우려스럽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의 방향이고 집권 세력의 정치이념이다. 최대치까지 정밀하고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재로서 분명한 것은 윤 대통령이 파면되든 복귀하든 윤석열 정권은 머잖아 끝난다는 점이다. 탄핵이 기각돼 복귀해도 대통령이 개헌을 전제로 임기 단축을 약속했기 때문에 조기 대선은 불가피하다.
분명한 것 둘째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마침내 사법 절차의 영역에 들어설 것이란 점이다. 대통령이 파면돼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여야 후보 모두 경쟁적으로 김건희 사법 처리를 밀어붙일 것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복귀해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권을 곪아 문드러지게 만든 ‘김건희 수렁’의 종료다.조기대선 국면에 영향을 미칠 가장 첫 변수는 이재명과 윤석열이 각각 어느 정도로 자기 진영 기둥을 훼손할지다.탄핵이 기각될 경우 이재명 대표는 연말이나 내년 초로 늦춰질 선거 이전에 대법 판결이 나와 출마 기회가 박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표가 마은혁 임명을 압박하며 “몸조심” 운운한 것은 이런 다급한 상황과 그 특유의 정치인성 DNA가 결합돼 나온 결과물이다.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조폭 두목이 평소 상가 상인들에게 인자하고 예의바른 사업가처럼 처신하다 점포 하나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하면 주변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퍼붓는다. 목적이 달성되면 다시 온화한 사업가로 돌아가고….
이 대표는 평소엔 여론, 중도층을 의식하다 원하는 결과의 달성 여부에 생사가 걸렸다고 판단되는 순간엔 오로지 목적 달성에만 집중한다. 지난 총선 때 공천 학살 과정을 보라. 세상의 눈을 전혀 개의치 않고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자칫하면 자신의 미래가 대통령에서 감옥으로 급전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드니까 조폭이 밀실에서나 할 만한 협박 표현을 해댄 것인데 이는 핵심 지지층에게 보내는 명확한 좌표 찍기이기도 하다.
몸조심 같은 표현은 의도한 용어 선택이든 아니든 그의 평소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평생을 대결적·전투적으로 살면서 상대를 쓰러뜨리거나 잡아먹히거나 둘 중의 하나의 세계로 살아온.원하는 것 획득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이런 행태는 푸틴, 차베스 등 권위주의 체제의 장기집권 지도자들이 공유한 특질이기도 하다. 그런 성향의 지도자가 일단 권력을 쥔 뒤 절대권력으로 굳혀가는 과정을 역사는 숱하게 보여줘 왔다. 그런 개연성이 시나브로 현실화되어도 막을 장치가 없는 게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어어 하다 당하듯 합법적 절차를 통한 단계적 독재화의 저지는 지난(至難)하다.
이 대표에게 가장 큰 약점은 현재 다수 국민이 그런 위험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걸 알면서도 이 대표가 자신의 본성을 부지불식간에 자꾸 노출시켜 국민에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진보진영의 최대 장애물이 이재명의 탁한 본성(本性)이라면, 보수진영 최대 수렁은 윤석열이라는 존재 자체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지금까지 여론조사 추이를 분석해 봤다. 결론은 간단했다. 윤석열이 노출되면 될수록 ‘보수 측 지표’(윤 지지+정권 연장 희망+탄핵 반대)는 떨어지고, 윤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올라갔다.
윤 대통령이 구속돼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최고치로 올랐다가 헌재에 나와 제스처를 크게 쓰니 내려갔고, 변론 끝나고 다시 조용해지니 좀 올랐다가, 주먹 세리머니를 하며 구치소를 나오니 또 떨어졌다. 관저정치 비판을 의식했는지 며칠 조용해지니 다시 조금 올라간다. 사실 이런 추이는 정부 출범 때부터 이어져 왔는데 이는 ‘국민적 비호감’의 반영이다.
정치의 기본은 간단하다. 동정받으면 이기고 잘난체하면 진다. 겸손하면 이기고 어깨에 힘주면 진다. 들으면(聽) 이기고 말하면 진다. 이 간단한 진리를 무시하면 줄반장 자격도 없다.
윤 대통령이 “나를 위해 강추위에 거리에 나선 수십만 지지자가 있는데 모슨 비호감이냐”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필자는 이번 탄핵 반대 집회를 계기로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5명의 속내를 들어봤다.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대졸 학력 중산층들이다. 거의 비슷한 답을 들었다. 그중 한 분(자영업)의 말을 전한다.
“나는 여론조사 전화는 다 받아준다. 그리고는 윤을 지지한다고 답한다. 윤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재명이 안 되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윤이 김건희만 싸고도는 행태에 화가 나고, 계엄 때도 혀를 찼다. 그럼에도 이재명 세상이 오는 게 너무 싫어 집회에 나간다.”
조만간 탄핵 국면은 정리된다. 이 대표는 윤석열이 선물한 계엄 로또가 당첨돼 사법 리스크를 벗어날지 겸허히 기다리고, 윤 대통령은 자신이 무너뜨린 보수의 초가삼간 주인들에게 이렇게 약속해야 한다. “그림자 속에만 머물겠다. 나를 잊어달라.”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