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이런 영화는 없었다"… 나홍진 신작, 칸의 밤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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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이런 영화는 없었다"… 나홍진 신작, 칸의 밤 뒤흔들다

입력 : 2026.05.18 17:38

'호프' 칸영화제 경쟁부문 공개
산골 마을에 괴생명체 출현
희망없는 세계 무력감 그려
공포·스릴러·SF·코미디…
다양한 장르 한 작품에 녹여
파격 실험에 호불호 갈릴 듯

17일(현지시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영화 '호프'의 배우들과 제작진. 왼쪽부터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알리시아 비칸데르·조인성·황정민, 나홍진 감독, 배우 테일러 러셀·정호연.  로이터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오른 영화 '호프'의 배우들과 제작진. 왼쪽부터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알리시아 비칸데르·조인성·황정민, 나홍진 감독, 배우 테일러 러셀·정호연. 로이터연합뉴스

안전하고 무탈한 작품들이 올해 칸영화제의 앞좌석을 채웠다는 냉담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칸의 밤을 흔들어 깨운 충격적인 논쟁작이 공개됐다. 나홍진 감독의 칸영화제 진출작 '호프'다.

좋은 영화란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야"라는 자문 속에도 작품이 너무 흥미로워 눈을 떼지 못하는 영화일 것이다. '호프'는 저 문장이 썩 잘 어울리는 영화다. '내가 지금 보는 것이 도대체 뭔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고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럼에도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시각적 쾌감이 압도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간) 칸영화제 주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의 궁전) 뤼미에르 극장에서 나 감독의 '호프'를 살펴봤다.

범석(황정민)과 성기(조인성)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현장'으로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범석은 호포항출장소장 직책을 가진 경찰이고 '소가 죽어 있다'고 신고한 성기는 소도시 호포의 사냥꾼이다. 이 영화의 예고편에도 이미 공개됐지만, 도착해 보니 황소가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소의 죽음은 이상했다. 날카로운 갈퀴로 온몸의 살갗이 찢겨 죽은 상태였다. 문제는 성기가 장총 사냥을 나간 고작 한 시간 사이에 소가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는 점이다. 곰이나 호랑이라기엔 발톱이 너무 컸다. 범석과 성기는 뭔가 설명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소를 죽인 짐승을 뒤쫓는 범석에게,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건물 상가는 뭔가가 '뚫고 지나간' 흔적으로 가득했고, 그때 저 멀리서 괴성과 비명이 들린다. 범석은 도시로, 성기는 숲속으로 '녀석'을 찾아간다. 그러다 범석이 마주한 건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괴생명체였다. 흔적을 보니 4m에 육박하는 키, 거대한 손톱, 웬만해선 자를 수도 없는 갑옷 같은 피부. 도대체 이 녀석은 뭐란 말인가. 영화는 이러한 초반 설정을 시작으로 2시간40분 동안 관객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

나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실체 혹은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이 짓는 표정의 연대기로 채워져 있었다. 난수표 같은 세계에서 살인범을 찾는 전직 형사 엄중호('추격자'), 목표를 향하되 회색지대를 떠돌 뿐인 구남('황해'), 진실의 주변을 맴돌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할 진실 앞에서 현혹되는 종구('곡성')가 그러했다.

신작 '호프' 역시 진실 혹은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은 엇비슷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문법은 이전과는 다르다. 나홍진은 '나홍진 이상'의 일을 해냈다. '진실은 문 뒤에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의 모습은 추하며, 추한 진실은 그게 진실인지 알 수도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장르 전환의 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 감독은 이전과는 다른 길을 간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장르 규정'이 불가능한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로 시작했다가 SF로 전환되더니 코미디로 몸을 바꾸고 다시 저 수많은 장르를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날 칸영화제 상영 중엔 '저게 도대체 뭐야'라는 의구심과, 몸을 덜덜 떨며 '안 돼' 하는 소스라침이 뒤섞인 반응이 다수였다.

제목이 왜 '호프'인지도 고민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희망을 위해 '녀석'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녀석들의 실체를 확인할수록 인간의 희망도 제거된다. 제거했다고 믿는 순간 녀석들은 다시 나타나고, 죽였다고 확신하는 순간 또 달려온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임을 알게 될 때, 녀석이 죽은 모습을 보고 방금 박수를 쳤던 관객들의 희망도 제거된다. 나도 타자도 희망이 없는 세계, 그곳에서 인간이 안주할 곳은 없다.

그러나 '호프'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장르의 복합은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과잉으로 느껴질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토록 실험적인 한국영화가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앞서 이런 영화는 없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엔 '이 시대의 괴물'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공동체가 살아가는 장소를 지나가는 길마다 폐허로 만들었던 건 독재자일 수도 있고, 정치일 수도 있고, 혹은 내전일 수도 있다. '호프'는 그 점에서 이 시대의 괴물이 누구인가를 묻게 만들고, 관객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투사하게 만든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호프'의 수상 결과는 24일 새벽(한국 시간) 발표된다.

[칸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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