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무비홀릭]권력자의 사랑

17 hours ago 3

최상류 가문의 백인 여성과 가난한 히스패닉 연하남의 비틀린 사랑을 담은 영화 ‘드림스’. 디스테이션 제공

최상류 가문의 백인 여성과 가난한 히스패닉 연하남의 비틀린 사랑을 담은 영화 ‘드림스’. 디스테이션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1] 노르웨이 영화 ‘돈 콜 미 마마’(2025년)를 보셨나요? 부킹이 난무하는 나이트클럽 이름 같은 제목에서 벌써 짐작하셨죠? 불륜 영화예요. 시장(市長) 부인이자 교사인 ‘아그네스’는 ①딸을 영국에 유학 보낸 상태이고 ②부부 관계는 권태기인 데다가 ③과거 부하 여직원과 외도했던 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가시지 않았어요. 벌써 불륜 서사를 위한 삼박자가 완비됐죠? 자원봉사를 위해 찾은 난민센터에서 우연히 시리아 출신 난민 청년 ‘아미르’를 만나면서 그녀의 속정은 타올라요. 배우고 싶지도 않다는 수영을 굳이 가르쳐준다면서 아미르를 수영장에 데려간 부인은 물속에서 첨벙첨벙 껴안고 어쩌고 하다가 키스하고, 이후 딸 방에서, 수영장에서, 차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간단없이 꾸준히 부단히 섹스해요.

사실, 아미르도 순진무구한 청년은 아니에요. ①부인이 비어 있는 딸의 방을 내어주는 바람에 공짜 숙식을 확보했고 ②비록 엄마뻘 연상이지만 섹스해서 무지하게 해로울 건 딱히 없으며 ③노르웨이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부인의 유력한 도움까지 받을 수 있는 일석삼조 시추에이션이었으니까요. 결국 아미르는 영주권을 획득! 이후 돌변해 부인을 멀리하고 또래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하죠. “넌 날 이용했어”라며 악다구니하는 부인에게 청년은 반박해요. “당신이야말로 날 이용했죠. 내게 엄마가 돼줄 수도 있었잖아요!” 순간 아그네스는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듯한 자괴감과 마주해요. 아미르에게 여성으로 사랑받았단 여태까지의 믿음은 착각이었으니까요.

결국 부인은 청년의 진짜 이름이 ‘바시르’이며, 과거 덴마크에서 영주권을 신청했다 퇴짜를 맞은 뒤 노르웨이로 재입국해 가짜 이름으로 영주권을 재신청한 믿지 못할 인물임을 남편에게 일러바치고, 남편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덮기 위해 시장의 권한을 이용해 아미르를 시리아로 돌려보냄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요. 어때요? 막장 치정극으로 치부하기엔 메시지가 꽤 선명하죠? 난민 청년과 시장 부인 사이엔 애당초 사랑이 성립될 수 없단 얘기죠. 갑을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건 권력을 가진 자만이 품는 자위적 판타지일 뿐이니까요.

[2] 멕시코 출신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 ‘드림스’(3월 개봉)도 권력자 여성과 그녀에게 소유되는 연하남의 관계를 다뤄요.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뉴 오더’(2020년) 감독의 작품이라곤 믿기 힘들 만큼의 범작이지만, 그의 사회적 발언은 여전해요. 대성공한 기업가의 딸로 아버지의 자선재단을 이끄는 ‘제니퍼’(제시카 채스테인)가 주인공. 그녀는 이름부터 종마 냄새를 풍기는 몸 좋고 힘 좋은 멕시코인 무용수 ‘페르난도’를 연인으로 두고 있죠. 제니퍼는 미국에서 일을 마치면 곧장 자가용 비행기로 멕시코로 건너가 자신의 별장에서 페르난도와 간단없이 꾸준히 부단히 섹스해요.

문제는 미국 무대에서 무용가로 성공하겠단 꿈을 페르난도가 품었단 사실. 제니퍼 몰래 미국으로 불법 입국한 그는 무용단 오디션을 보면서 제니퍼와의 사랑도 이어가길 희망하지만, 멕시코인과 사귄단 사실이 백인 주류 사회에 알려지길 꺼리는 제니퍼는 페르난도를 자기 집에 반쯤 감금하다시피 붙잡아두고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섹스해요. 결국 자신이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각성한 페르난도는 떨쳐 일어나요. 그녀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하고, 무용단 주연 무용수로 발탁되죠! 그러나 첫 무대를 앞두고 이민국에 붙잡힌 페르난도는 멕시코로 강제 송환되고,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한 페르난도에게 남은 일이란 그저 제니퍼의 별장에서 그녀와 다시 간단없이 꾸준히 부단히 섹스하는 일뿐이에요.

곧 페르난도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돼요. 자신을 이민국에 신고한 장본인이 제니퍼였음을! 눈이 뒤집힌 페르난도는 제니퍼를 감금함으로써 케이지 속 애완견 취급을 당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를 실현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제니퍼는 멕시코 깡패들을 시켜 페르난도의 정강이를 두 동강 내버림으로써 다시는 무용을 꿈꾸지 못할 불구로 만들죠. 맞아요. 감히 주류가 되길 꿈꾼 불법 이민자에 대해 작금의 미국이 내리는 무자비한 응징을 서글프고 잔인하게 은유하는 대목이죠.

[3] 권력자들의 사랑은 스토킹인 경우가 많아요. 우릴 사랑한단 권력자들은 그래서 대부분 우릴 구석에 몰아넣고 자유를 빼앗고 못살게 굴죠. 사랑 같은 건 언감생심 바라지 않아요. 당신의 사랑은 무섭고 피곤하니, 제발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영화 ‘드림스’의 제목이 왜 ‘꿈(Dream)’이 아니고 ‘꿈들(Dreams)’이겠어요? 지배자가 꾸는 사랑의 꿈은 피지배자의 꿈을 악몽으로 만드는 권력관계의 아이러니가 함의된 제목이 아닐 수 없죠. 네 차례 결혼하고 이혼한 전설적인 여배우 김지미는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명언을 남겼어요. 사랑한다면, 우릴 부디 내버려둬 주세요. 당신에겐 사랑이지만, 우리에겐 대상포진입니다.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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