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인, 제비꽃을 들다…초상화 속 숨겨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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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어두운 수풀에 안겨 있다. 표정과 자세는 억지로 힘을 준 흔적 없이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정면을 살짝 비껴간 눈빛, 침엽수 이파리에 스며들 듯 기댄 모습이 여인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기존 초상화들이 정형화된 미감과 고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젊은 여인의 초상’은 귀족적 이상미를 강조하던 18세기 말 프랑스 초상화의 흐름에서 벗어난 사례로 꼽힌다. 이를 그린 오라스 베르네(1789~1863)는 대상을 이상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노력한 프랑스 화가. 고전주의를 칭송한 아카데미 미술의 고상한 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일상적 소재와 친숙한 시선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19세기 전후 프랑스에서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서정적이고 상징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확산했다. 이러한 풍조는 ‘젊은 여인의 초상’에도 영향을 줬다. 작품을 소장한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초상화의 배경이 실내가 아닌 야생인 점, 여인을 둘러싼 향나무가 순결의 상징이라는 점 등이 인물의 내면과 상황을 드러내는 요소로 쓰였다”고 설명한다.

그림에는 이밖에도 흥미로운 상징이 곳곳에 숨어있다. 여인이 손에 든 제비꽃은 전통적으로 정절을 뜻하는 자연물이다. 흰색 드레스와 분홍 리본, 허리띠는 젊고 순수한 이미지를 환기하는데, 제비꽃 및 향나무와 결합돼 여인이 약혼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여성을 그렸지만, 다양한 상징 언어를 통해 인물의 성품과 처지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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