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약 8년 만에 고위급 핵 협상을 재개했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된 이번 회담에서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2015년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미국의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오는 19일 추가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특사와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대표단을 이끌고 약 2시간 동안 핵 협상을 벌였다. 이는 2017년 9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후 8년 만의 양국 간 고위급 공식 접촉이다. 백악관은 회담 직후 성명을 통해 “논의는 매우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며 “양국은 19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추가 회담에서는 핵합의의 기본 틀과 협상 일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아락치 장관은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다음주 초 협상의 기반이 마련된다면 실질적 논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양측 모두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단기 합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협상에서 이란이 자국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경제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해외에 동결된 수십억달러 규모 자금에 대한 접근권과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 정유사에 대한 미국의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 수준(3.67% 이하)으로 낮출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이에 맞서 2019년부터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했고, 2021년부터 우라늄 농축도를 준무기급인 60%까지 높였다.
다만 이란 측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현지 ISNA통신은 전했다. 미국의 공식 입장이 이란 핵 프로그램 해체인 만큼 향후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트코프 특사는 회담에 앞서 WSJ와의 인터뷰에서 “양국 간 타협점을 찾기 위한 다른 해법을 모색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하며 타협의 여지를 열어뒀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기존 입장을 바꿔 미국의 협상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거부할 경우 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정부 고위 인사들의 직언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달 하메네이에게 “이란이 협상 제안에 응하지 않거나 협상이 결렬되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의 갈등이 전쟁으로 치달으면 심각한 경제난 속에 국민 불만이 폭발해 정권 붕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얄화 가치는 2015년 핵합의 당시보다 95% 이상 폭락했고, 연간 물가 상승률은 30%를 넘는 등 이란 경제 상황은 극도로 악화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