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일대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는 지역이 잿더미로 변했다. 27일 현재 이번 산불로 숨진 사람은 28명에 달한다. 1989년 강원도 산불(26명), 1995년 경북 지역 산불(25명) 때의 인명 피해를 넘어서는 사상 최악이다. 이례적 강풍으로 불이 무섭게 번졌다곤 하지만 이번 산불은 우리의 취약한 방재 능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26일 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서 70대 조종사가 30년 된 노후 헬기를 몰고 출동하다 추락해 숨진 사건이 단적인 예다. 이 조종사는 이틀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3차례나 진화에 나섰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민간 진화대원들이 장비도 못 갖춘 채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숨진 비극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들의 늑장 대응도 문제였다. 대부분 60∼80대인 이번 산불 사망자들은 집에서 발견된 경우가 많았다. 뒤늦게 화마를 피하려다 도로나 차량 안에서 숨진 사례도 있다. 대피 경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늦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산간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고 이번처럼 불이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지는 상황이라면 선제적 대피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산불이 지자체 경계에 도달해서야 대피 경보를 내린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 어디로 피하라는 안내도 없이 막연히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라’고 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산림청은 2년 전 전국에서 동시다발 산불이 발생하자 ‘산불 백서’를 낸 적이 있다. 조기 진화에 효과적인 대형 헬기를 12개 권역마다 2대씩 총 24대 이상 확충하고 전문 진화 인력도 2027년까지 25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까지 중형 헬기 2대를 늘린 게 전부이고, 진화 인력도 아직 500여 명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국토의 6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이상기후까지 겹치며 거의 해마다 큰 산불이 난다. 산불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면 방재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지자체의 재난 매뉴얼 정비 등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체계적 시스템이라도 갖춰야 한다. 큰 산불이 날 때마다 비 오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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