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한 축제!"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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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7일 공연 리뷰
지휘자 타카치-너지, 34명 단원과 함께 만든 축제의 선율
쇼팽콩쿠르 우승자 블레하츠와 함께 만든 환상적 봄밤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타카치-너지.  ⓒSeoul Arts Center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타카치-너지. ⓒSeoul Arts Center

"이것이 진정한 축제!"

4월이면 클래식 팬들은 부쩍 분주해진다. 3월 마지막 주부터 열흘간 통영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선율이 흐르고, 4월 초부터는 장소를 서울로 옮겨 예술의전당에서 3주간의 교향악 축제가 펼쳐진다. 올해로 37회를 맞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1989년 음악당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시작된, 세계 유일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다. 4월 1일부터 23일까지 18개 교향악단이 총출동하는 연중 최대 규모의 무대, 그중 지난 7일 무대는 '축제' 그 자체였다.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의 소도시 베르비에에서 온 손님,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CO)가 이날 주인공이었다. 1994년에 시작된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상주 단체로 2005년 창단된 이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 빈 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단체의 단원들로 구성된 드림팀이다. 이들은 통영국제음악제의 무대를 뜨겁게 달군 직후 서울로 상경해 교향악 축제도 그들의 색채로 물들였다. 두 도시의 클래식 축제를 잇는 특별한 릴레이였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타카치-너지. 그가 악보에 직접 형광펜 등으로 표시해둔 악보가 눈에 띤다. ⓒSeoul Arts Center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타카치-너지. 그가 악보에 직접 형광펜 등으로 표시해둔 악보가 눈에 띤다. ⓒSeoul Arts Center

이날 분위기를 이끈 것은 단연 지휘자 가보르 타카치-너지였다. 전설적인 현악사중주단 타카치 콰르텟의 창단 멤버이자 제1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1992년 손 부상을 계기로 지휘자로 전향, 2007년부터 VFCO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2024년에는 헝가리 최고 예술상인 코슈트상을 수상하며 그 예술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실내악의 감각을 오케스트라 지휘에 고스란히 접목해온 그의 이력은 이날 무대에서 그대로 구현됐다.

그의 지휘는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콩콩 뛰는 듯한 발놀림, 양손이 한시도 쉬지 않고 음표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지휘, 그리고 각 악기 파트의 진입 타이밍을 섬세하게 이끄는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단원들이 활을 켜기도 전에 그가 먼저 몸짓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한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온갖 색깔의 형광펜과 붉은 펜으로 가득 찬 악보였다. 객석에서도 한눈에 보일 만큼 빼곡히 표시된 악보는 그 자체로 타카치-너지의 서사였다. 악기 파트별 진입부마다 색깔을 달리해 표시하고, 강조할 프레이징과 다이내믹의 변곡점마다 흔적을 새겨뒀고, 이를 충실히 반영해 지휘를 선보였다. 지휘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이 악보와 얼마나 치열하게 씨름했을지, 그 공부의 밀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이끄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Seoul Arts Center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이끄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Seoul Arts Center

1부의 시작은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였다. 모차르트가 남긴 41곡의 교향곡 가운데 단조로 쓰인 작품은 25번과 40번, 단 두 곡뿐이다. 그중에서도 40번은 애수와 비극미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슈베르트가 "이 곡 가운데서는 천사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표현했을 만큼 선율의 아름다움은 각별하다.

시종일관 빠른 템포는 처음엔 낯설었다. 그러나 차츰 객석도 그 속도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타카치-너지가 설정한 축제의 템포였다. 그는 빠르게 질주하는 가운데서도, 마치 오디오 시스템의 볼륨 다이얼을 조절하듯 소리의 강약을 섬세하게 조율했다. 음의 질감은 그의 손끝 아래에서 쉼 없이 모양을 바꿨다. 현악 25명, 관악 9명, 총 34인의 소편성이지만 소리의 입체감과 볼륨감은 충분했다. 비결은 극적인 강약 대비, 전 악장을 관통하는 빠른 속도, 그리고 현악이 앞장서서 음량과 음색을 입체적으로 빚어내는 방식이었다.

이어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와의 협연이 펼쳐졌다. 2005년 쇼팽 콩쿠르를 제패하며 '동시대 최고의 쇼팽 연주자'로 이름을 각인시킨 그의 선곡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쇼팽과는 결이 다른 선택이었다. 베토벤 속에서도 정확한 아티큘레이션과 서정적인 음색은 독보적이었고, 특히 2악장은 그에게 딱 맞는 옷처럼 빛났다. 앙코르로 잠시 들려준 쇼팽 프렐류드는 오는 7월 예정된 리사의 달콤한 예고편 같았다.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이끄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Seoul Arts Center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이끄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 ⓒSeoul Arts Center

하지만 이날 축제의 진짜 주인공은 2부였다. 선곡은 베토벤 교향곡 제7번. 리스트가 '리듬의 화신'이라 극찬하고 바그너가 '춤의 성화(聖化)'라 불렀던 바로 그 곡이다. 빠르고 강렬한 리듬이 전 악장을 지배하며 듣는 이를 축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 작품은, 4악장의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 이르러 베토벤 스스로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쿠스"라고 표현했을 만큼 격렬하고 환희에 넘쳤다. 타카치-너지와 VFCO가 오랫동안 함께 다듬어온 단골 레퍼토리답게, 연주는 유려하게 빛났다. 달리는 템포 위에 화려하고 풍성한 축제의 선율이 쏟아졌고, 단원들은 지휘자의 과감한 해석을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흡수해냈다.

앙코르는 3곡이나 이어졌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다운 선택이었다.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과 1번에 이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헝가리 만세'가 울려 퍼졌고, 마지막 순간 타카치-너지는 "만세!"를 한국어로 외치는, 한국 관객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다. 쏟아지는 객석의 환호에 화답하듯 단원들도 쇼맨십을 아낌없이 펼쳤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악기를 빙글 돌리는 퍼포먼스로, 일부 단원들은 손키스와 하트를 날리며 객석을 달궜다. 공연 후에는 지휘자와 블레하츠가 직접 사인회를 열어 공연의 여흥을 관객들과 나눴다.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공연을 마친 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인사하는 모습. ⓒSeoul Arts Center

지휘자 타카치-너지가 공연을 마친 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와 인사하는 모습. ⓒSeoul Arts Center

이날 무대는 가장 축제다운 무대였다. 화려한 무대, 스타의 이름값보다 중요한 건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 순간의 열기임을.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이날 관객들이 원하는 축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끌어냈다. 매일 저녁 클래식 선율로 빚어내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공연을 마친 뒤 팬들에게 직접 사인해주는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와 지휘자 타카치-너지. ⓒSeoul Arts Center

공연을 마친 뒤 팬들에게 직접 사인해주는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와 지휘자 타카치-너지. ⓒSeoul Arts Center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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