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6% vs -9.68%.’
흔히 비교하는 미국과 국내 주식의 수익률 차이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투자하는 스타트업 콴텍의 국내주식형 알고리즘과 코스피지수의 1년 수익률(2025년 4월 3일 기준) 비교다. 금융위원회 감독을 받는 코스콤의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에서 검증받은 수익률이다.
기술 수준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AI가 인간의 결정 과정을 대신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AI의 수익률이 벤치마크 지수를 뛰어넘는 데다 인간 대신 감정이 없고 데이터를 무한히 학습할 수 있는 AI가 투자에 적합하다는 인식이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확산 변곡점 넘은 AI 위임 투자
6일 코스콤에 따르면 핀트, 콴텍, 에임(AIM), 파운트 등 자문·일임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금액은 3483억원으로 2023년 말 1186억원 대비 약 3배로 늘었다. 자문·일임은 로보어드바이저업체에 돈을 맡기고 수수료를 내는 유료 운용 서비스 형태다. 인간 프라이빗뱅커(PB)가 아니라 AI가 운용하는 자금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이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은 2022년 말 11만4868명에서 올 2월 말 16만4869명으로 2년여 만에 약 5만 명(43.5%) 증가했다.
AI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인간이 투자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AI가 투자자의 증권사 계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동의하고 자금을 넣으면 고도로 학습된 알고리즘이 투자자 성향 파악, 종목·시황 리서치, 투자 대상 선정, 최적의 매수 시점 결정, 주문까지 전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한다. 투자자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보유 기간에도 AI가 계속 종목과 시황을 분석하며 매도 타이밍을 잡는다. 5~6년 전 어설프게 유망 종목을 추천하는 수준이던 로보어드바이저 초창기와는 완전히 다른 AI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시장점유율 1위 스타트업 디셈버앤컴퍼니가 운영하는 핀트는 미국 주식, 미국 배당주식, 한국 주식 등 일반적 테마는 물론 미국 기술혁신 스몰캡에 투자하는 ‘미국 넥스트 패러다임’ 상품까지 내놨다. AI가 ‘넥스트 엔비디아’를 투자자 대신 찾아주는 셈이다. 미국 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미국 거버넌스’ 상품도 운용한다.
AI 수익률, 코스피·S&P500 웃돌아
AI의 투자 성과는 수익률이 증명하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한국 주식 중 성장성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콴텍 국내주식형 대형 3호’ 알고리즘의 최근 1년 수익률은 35.26%에 이른다. 코스피지수가 9.68% 하락하는 동안 거둔 성과다. 핀트의 ‘디셈버 자율주행 스포츠모드’ 알고리즘 수익률도 10.61%로 코스피지수 수익률을 웃돌았다. 파운트의 ‘당신을 위한 편안한 투자’ 알고리즘 또한 5.35%의 1년 수익률을 기록했다.
장기간 우상향한 미국 주식 투자에서도 일부 AI는 지수 상승률을 웃돌았다. 최근 3년간 S&P500지수가 53.2% 오르는 동안 ‘NH-콴텍 미국주식형 현금여유기업’ 알고리즘은 66.97%의 수익을 냈다. ‘디셈버 미국 주식 솔루션 적극투자’도 같은 기간 57.76% 올라 S&P500 수익률을 앞질렀다.
AI 투자는 하락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게 로보어드바이저업계의 설명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자체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찾아내고 안정적으로 분산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알고리즘의 특성도 손실 방어에 효과적이다.
코스콤에 따르면 벤치마크 지수인 코스피200지수가 17.2% 하락한 지난해 하반기 안정추구형 국내주식 알고리즘은 -4% 수익률로 선방했다. 최근 국내외 증시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안정성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로보어드바이저를 고려해 볼 만하다.
430조원 퇴직연금도 AI 투자 허용
지금까지 유료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스타트업이 주도했다. 기존 증권·자산운용사들은 펀드매니저 중심의 인프라 때문에 AI에 자원을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수준이 급속도로 발전·확대되면서 대형 금융사도 로보어드바이저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금액은 2023년 말 55억원에서 올 2월 말 156억원으로 증가했다.
최근 퇴직연금의 로보어드바이저 위탁 운용이 허용되면서 증권·자산운용사들은 알고리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는 직접 적립금을 운용해야 했지만 작년 말 퇴직연금의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이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되면서 규제가 풀렸다. 아직 IPR 계좌당 연간 900만원(매년 900만원씩 증액)으로 제한돼 있지만 향후 규제 완화에 따라 전체 43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자금이 로보어드바이저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용 알고리즘 중 수익률이 가장 높은 것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원자재모멘텀_ETF_P 적극투자2’다. 1년 수익률이 32.12%에 달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KimRobo_목표실질수익률’은 같은 기간 16.42%의 수익을 올렸다.
박한신/양현주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