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앤아트, 클림트展 개최
서울 그라운드시소 명동에 전시
대표작 80여점 디지털로 펼쳐
클림트 예술세계 테마별로 소개
생생한 시청각 자극에 몰입감
높이 6m 초대형 화면 압도적
클림트 후원자 뵐레가 내레이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금빛 명화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경의를 담은 작품 ‘키스’(1908)가 등장하면 꼭 끌어안은 남녀가 있는 꽃밭 위로 찬란한 황금빛이 부슬비처럼 떨어졌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높이 6m 초대형 디지털 패널로 둘러싸인 서울 중구 그리운드시소 명동이 클림트 작품 미디어아트로 가득 찼다. 그림 속 풍경이 움직이면서 새가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는 등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졌다.
전시기획사 미디어앤아트의 ‘구스타프 클림트: 타임리스 뷰티’가 개막해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억850만달러 경매 기록을 세운 유작 ‘부채를 든 여인’(1918)과 길이 24m 대작 ‘베토벤 프리즈’(1901) 등 대표작 8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클림트의 오랜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에르빈 뵐레의 회고록을 토대로 클림트의 예술 여정과 인간적 면모를 들려준다.
전시는 시간 순으로 작품을 나열하는 대신에 사랑과 자유, 생명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상징주의 거장 클림트가 탐구했던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를 중심으로 연대기를 재구성해 보여 준다. 총 8개의 스토리텔링 영상이 한 편의 영화처럼 50여분간 펼쳐진다. 프롤로그, 아름다움에 관한 6개 테마별 챕터(△자신만의 것 △자유를 위한 합창 △빛나는 황금 △진정한 사랑 △생명의 소용돌이 △마음의 정원), 에필로그 순이다. 표현 방식은 영화와 유사하고, 전개 방식은 일정한 챕터로 막이 오르내리는 뮤지컬과 유사하다. 흰 배경에 액자 형태로 실제 원화의 모습도 간간이 보여 주는데 이때는 마치 클림트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에 들어온 것 같다.
명화의 요소를 생동감 있게 재해석한 영상과 천장을 제외한 5개 면을 모두 화면으로 감싸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은 몰입감을 한껏 높여 준다. 여기에 더해 특별히 차별화된 점은 작품의 무드를 감각적, 입체적으로 전달해 주는 사운드다. 웅장한 음악과 적절한 효과음들이 다양한 시각적 효과에 연동돼 시시각각 공간을 메워 클림트의 작품 속 여러 장면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일례로 ‘베토벤 프리즈’ 연작을 선보일 때는 실제로 클림트가 작업 당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중 ‘환희의 송가’가 흘러 나온다. 그 외 음악은 노슬아 작곡가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오케스트라 사운드 트랙이다.
오스트리아의 아방가르드 예술단체 ‘빈 분리파’의 수장이었던 클림트는 기존의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붙였다. 그는 금속 세공가 출신인 아버지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으로 금박 같은 화려한 장식을 작업에 썼다. 뵐레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황금이 가진 의미와 색채를 활용해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클림트가 평생에 걸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이었다.
클림트 작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금박을 사용한 황금빛 그림을 떠올리지만, 이번 전시는 그가 천착해온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두루 깊이 있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일례로 ‘부채를 든 여인’에서 클림트는 금박 대신 파스텔톤의 동화적인 색채와 기하학적 패턴, 꽃과 새 등을 활용해 화려함을 표현했다. 또 1901~1909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우주의 신비, 생명과 죽음, 고통과 치유, 정의(正義)와 법의 개념에 대해 고찰해 그린 천장화 ‘철학’과 ‘법학’, ‘의학’은 클림트가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깊숙히 파고들었는지 보여 준다. 자연의 모습을 자기만의 미학적 환상으로 재구성한 ‘커다란 포플러 나무’(1900)도 어둡지만 디테일한 붓질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내면의 미를 탐구한 클림트는 특히 여성들의 모습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여성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섬세함과 강인함, 관능미 등을 형상화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시대상을 여성에 투영하기도 했다. 클림트의 ‘황금 시기’(1890년대 후반~1910년대 초반)에 완성된 1901년작 ‘유디트Ⅰ’가 대표적이다.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 중 하나인 ‘유디트서’에서 적군의 장군을 유혹해 술에 취하게 만든 뒤 머리를 벤 용감한 유대 여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클림트는 유디트를 단순히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지혜로운 여성의 관능적인 느낌을 부각시켰다. ‘물뱀’ 연작에선 여성의 화려한 신체를 통해 내면의 에로티시즘, 강박증 등을 표현했다.
처음에 이런 작품들은 음란하고 외설적이라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에곤 실레(1890~1918) 등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훗날에는 신표현주의를 선도한 것으로 평가됐다. 클림트는 갑작스럽게 병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을 때도 깊은 우울감과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고 삶과 죽음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깨달음과 여기서 얻은 새로운 희망을 화폭에 옮겼다. 일례로 ‘생명의 나무’(1910~1911)에서 그는 유기적인 형태를 활용해 생명과 우주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이 작품은 스토클레 궁전에 그려진 벽화 ‘스토클레 프리즈’의 일부다.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는 “원화 전시에 가면 짤막한 캡션이나 소개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데 일반 대중의 입장에선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 아트로 클림트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면서 뵐레의 시각에서 이끌어 가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클림트의 예술 세계에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됐다”며 “그라운드시소 명동은 새로운 개념의 극장 같은 공간이다. 미술 전시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