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고정이하여신 18억弗
역대 최고인 작년 수준 육박해
해외점포 모니터링 강화나서
동남아시아 경기 둔화 여파로 4대 시중은행 해외 사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역내 경기 부진으로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채권(고정이하 여신)은 불어나는데, 현지 기준금리 상승에 조달 비용까지 높아지며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부실 관리에 고삐를 쥐는 모양새다.
15일 매일경제가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시중은행 해외점포 고정이하여신 현황’ 자료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해외 부실채권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18억5600만달러로 조사됐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수준(20억5700만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 속도라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공산이 크다.
시중은행 가운데서는 KB국민은행 부실채권 규모가 12억200만달러로 가장 많았다. 우리(3억1200만달러), 하나(1억9300만달러), 신한은행(1억4900만달러)이 뒤를 이었다.
은행 부실채권은 대부분 동남아에서 나왔다.
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싱가포르·필리핀 등 동남아 6개국 부실채권은 12억8900만달러로 전체 해외 점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9.4%에 달했다.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이 2억 달러대라는 점에 비춰보면 규모가 훨씬 크다. 특히 국민은행이 2018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자회사 KB뱅크(KB부코핀은행) 부실 규모가 컸다. 국민은행 해외 부실채권 59%인 7억1000만달러가 인도네시아 단일 시장에서 나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인도네시아 등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며 수익성이 나빠졌는데 경기 악화에 연체율까지 상승하고 있다”며 “경기 변동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난항을 겪고 있는 동남아 상황에 대해 중장기 관점에서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가 성장하는 시장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부코핀은행을 통해 시장을 선점한데 따른 긍정적인 요인이 더 커질 전망으로 2026년 이후로는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은 부실채권 관리 수위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막 바닥을 짚으려는 조짐을 보이는 해외 실적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민은행은 올 들어 해외 자산관리 비상 대책반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고, 신한은행은 지난해 도입했던 잠재 부실여신 감축 제도를 대폭 강화했다. 해외 점포에서 상태가 불안한 중점 관리 기업 리스트를 한국 본부에 전달하면, 본부에서 해당 업체들을 심층 심사하면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나은행은 부실 예상 업종 분석 능력을 끌어올리며 해외 점포에 24시간 상시 대응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글로벌 자산 회수 전문기관과 제휴를 맺고 부실채권 회수기간을 단축하며 사후 관리도 강화했다. 우리은행도 연체 여신 등 해외 점포 금융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부실여신을 줄이는 해외 점포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개편해 관리 모드에 나섰다.
캐시카우로 손꼽혔던 해외 사업은 팬데믹 기간 타격을 입었다가 올해 들어 반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4대 은행 해외점포 당기 순이익은 2022년 코로나19 국면에 전년 대비 24.7% 급락하며 6억6500만달러까지 줄었지만, 지난해 8억7300만달러로 올라섰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5억6500만달러까지 회복됐다.
신한(2억9600만달러), 하나(1억4400만달러), 우리은행(1억3600만달러)은 올 상반기 해외 점포에서 당기순이익을 냈고, 국민은행은 지난해 8500만달러 적자에서 올 상반기 11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적자 폭이 점차 줄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내외 여건 악화에 달러당 원화값이 급락하는 등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해외 부실채권도 쉽사리 줄지 않는 상황”이라며 “부실이 발생할 수 있는 업종과 차주에 대한 실시간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