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주담대 '강제 속도조절'…대출 여력 200兆 이상 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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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은행의 가계대출을 조이기 위해 새로운 자본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부동산 경기가 과열하거나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내줄 때 추가 자본을 더 쌓도록 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가계부채 급증과 집값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수요를 중심으로 규제했지만, 이번에는 은행을 직접 규제하겠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18일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은행에 새로운 자본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SCCyB)과 부문별 시스템리스크완충자본(sSyRB) 도입이 거론된다. 이들 제도는 특정 부문, 특히 부동산시장이 과열하면 은행의 주담대 증가 규모에 상응하는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한 규제다.

은행 주담대 '강제 속도조절'…대출 여력 200兆 이상 줄 듯

은행이 보유한 자산에 위험 수준을 반영해 ‘위험가중자산’(RWA)을 산정할 때 주담대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 하한선을 올리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의 주담대 평균 위험가중치는 15% 수준이다. 국정기획위는 주담대의 위험가중치가 25%인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은행은 같은 금액의 주담대를 내주더라도 더 많은 자기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다만 이럴 경우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이 200조원 넘게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정기획위에서 논의하는 방안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위 '주담대 자본규제' 추진
유럽 각국서도 활용하는 제도…전체 신용공급 위축될 우려

국정기획위원회가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은행의 자본 규제 방안을 제시한 것은 가계부채와 집값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수요 중심 대출 규제로 부동산 시장 과열을 억제하지 못하자 대출 공급자인 은행을 겨냥한 것이다. 보유세 인상 등 ‘세금 카드’를 당장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은행을 규제해 부동산 대출을 구조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대출 공급처 직접 겨냥

18일 국정기획위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부동산 시장 안정 방안으로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부문별 경기대응완충자본(SCCyB), 부문별 시스템리스크완충자본(sSyRB) 등 부동산 시장 관련 완충자본을 은행에 추가로 쌓도록 하는 것이다. SCCyB는 주담대가 급증할 때 한시적으로, sSyRB는 부동산을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로 보고 상시로 자본을 더 보유하는 제도다.

은행들은 현재도 경기 변동에 따른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위험가중자산(RWA)의 최대 2.5% 범위에서 경기대응완충자본을 쌓고 있다. 국정기획위의 구상은 부동산 시장 관련 완충자본 적립을 추가로 요구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경기가 과열될 때 은행이 대출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한국에 가계 부문 담보·무담보 대출에 대한 경기대응완충자본을 도입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국정기획위는 “유럽 각국에서도 활용되고 있는 제도”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 방안은 평균 15% 수준인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선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다. 국정기획위 내에서는 25% 수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은행은 대출 자산별로 위험도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고, 이를 기준으로 RWA 대비 일정 비율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예컨대 주담대 100억원을 내줬다면 위험가중치 15% 기준으로 15억원이 RWA로 분류된다. 국정기획위는 위험가중치를 높이면 은행의 자본 부담이 커져 주담대 수익성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대출 공급이 억제될 것으로 본다.

◇ “수요 규제로는 한계”

국정기획위가 은행 자본 규제를 검토하는 건 기존 수요 규제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돈을 빌리기 어렵게 했지만 부동산 시장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 역시 정치적 부담이 크다. 여당 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세금 인상 카드를 섣부르게 꺼내 들면서 정권을 내줬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다만 새 정부가 기대하는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은행의 자본 부담이 커지면 자칫 전체 신용공급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주담대의 위험가중치를 상향 조정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은 크게 줄어든다. 올해 1분기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전세자금 포함) 잔액은 595조1000억원이다. 여기에 주담대 위험가중치가 기존 15%에서 25%로 10%포인트 높아지면 산술적으로 RWA가 약 59조5000억원 증가한다. 은행들이 늘어난 RWA를 상쇄하기 위해 별도 자본 확충 없이 기존 자본 비율을 유지하려면 최대 238조원에 달하는 대출을 줄여야 한다. 이는 현재 주담대 잔액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SCCyB·sSyRB까지 도입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은 훨씬 더 위축될 수 있다.

◇ 예상치 못한 부작용 있을 수도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은행이 자본 확충 부담을 떠안을 경우 위험자산 심사 기준을 강화하거나 고위험군 대출을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수요자와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은행도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다. 주담대는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낮은 위험가중치로 은행이 수익을 창출해온 영역이다. 이 부문의 규제 비용이 커지면 수익 대비 자본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배당 여력이나 성장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주식시장 활성화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국정기획위는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가 가계에서 기업으로 이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20~150%)는 주담대보다 대체로 높다. 이 때문에 가계에서 기업으로 ‘자금 재배분’이 원활히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실물경제 리스크와 금융 리스크가 중첩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시도”라면서도 “은행은 수익성이 높은 주담대 비중을 줄여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미현/서형교/김진성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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