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李 대통령, '바보 노무현'정신으로 트럼프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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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칼럼] 李 대통령, '바보 노무현'정신으로 트럼프 만나길

“잠들어 있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는 순간 온 세상이 흔들릴 테니.”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사자는 중국이다. 이미 200년 전 얘기이니, 대단한 촉의 소유자다.

근래 서구 지도자 중 나폴레옹에 필적할 선견지명을 지닌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카터 행정부 때인 1979년 1월 미·중수교로 대만과 단교한 이후, 안보 불안에 떠는 대만에 1982년 여섯 가지 사항을 보장해 준다. 구체적으로 ①대만 무기 수출에 관해 기한을 정하지 않고 ②대만 무기 수출에서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으며 ③중국과 대만 간에 중재 역할을 하지 않고 ④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으며 ⑤대만의 주권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지 않고 ⑥대만으로 하여금 중국과 협상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6항 보증(六項保證, Six Assurance)’으로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총통의 끈질긴 요구에 구두로 약속한 것이나, 지금까지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견지해 오고 있는 철칙이다. 미국 의회는 얼마 전 6항 보증을 명문화하자는 법안을 공화·민주 초당적으로 발의해 놓고 있다.

대만은 6·25전쟁처럼 전면전은 아니었더라도 이에 버금가는 대형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 1954년 1차 대만해협 위기 때는 미국이 중국에 핵 위협까지 했다. 1958년 2차 위기 때는 중국 푸젠성 샤먼과 불과 1.8㎞ 떨어진 진먼(金門)섬에 44일 동안 48만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이때 군인들의 공포를 달래주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여 보급한 술이 ‘금문 고량주’다. 3차 위기는 대만 첫 직선 총통 리덩후이의 당선을 막기 위해 1995년 중국이 해협을 봉쇄한 일이다. 결국 미 해군이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로 집결하는 데 이르렀다. 중국이 항공모함 랴오닝함 건조에 나선 것도, 미국 용인 아래 일본 해상자위대의 본격 증강이 이뤄진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의 중국은 나폴레옹의 표현대로 ‘깨어난 사자’다. 경제 규모는 미국에 필적하고, 군함 수는 미국을 추월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태평양 진출의 패권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만일 대만이 중국 수중에 떨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대만 다음의 약한 고리인 필리핀, 그다음으로 베트남이 중국의 표적이 될 것이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 열도의 최서단인 요나구니섬과 대만 간 거리는 100㎞에 불과하다. 일본 해상 무역의 40%가 대만해협을 포함한 중국 근해를 통과한다. 우리는 무관한가. 서울과 도쿄, 마닐라를 연결하는 삼각형을 그린다면 세계 무역의 50%는 이 지역을 통과한다. 특히나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연결하는 제1도련선이 무너지면 서해는 중국의 내해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트럼프 2기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가 <거부전략>에서 쓴 표현대로 대만은 탄광의 카나리아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민감한 안보 알람이다.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이 미국과 어깨 걸고 대만 사수에 나서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나라보다 중국과 지정학적 특수 관계에 있는 한국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대만해협은 우리와 무관하다’는 기조를 유지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볼까.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로 여기거나, 중국 패권주의에 편승했다고 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 관세 협상보다 훨씬 고차 방정식인 안보 협상이다. 대중 견제 역할과 주한미군 병력 규모 등이 포함된 동맹 현대화에서부터 주둔비 분담, 전시작전권, 북핵 억지력 문제 등 중차대한 의제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트럼프가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사항은 이 질문 아닐까 싶다.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 우리가 미국과 맺은 양대 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지금은 퇴색했지만, 그 한·미 FTA를 끌어낸 이가 “반미 좀 하면 어떻습니까”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은 일을 지지자들의 돌팔매에도 뚫고 나간 ‘바보 노무현’ 정신이었다. ‘먹사니즘’ ‘잘사니즘’에 앞선 ‘죽사니즘’의 근본 숙제를 안고 트럼프를 만나러 가는 이 대통령에게 바보 노무현이 일궈낸 한·미 FTA 같은 반전 드라마를 주문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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