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과 런던, 도쿄의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거래를 시작하기 전 한국 증시부터 확인하는 것이 새로운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고 한다. 코스피의 장중 변동성을 분석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여는 풍경도 생겼다. 런던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제 우리는 모두 한국 투자자”라며 매일 아침 한국 증시를 살펴 인공지능(AI) 관련주의 투자 심리를 파악한다고 했다. 일본 증권가에서는 이제 코스피 움직임을 뚫어지게 봐야 한다며 ‘코스피 니라미(睨み·주시하기)’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금융시장의 주요 지표나 일정에 대해 ‘엔화 니라미’ 등으로 표현하던 것을 코스피로 확장했다.
▷실제로 최근 코스피는 글로벌 증시 전체를 쥐고 흔들고 있다. 파죽지세로 9,000선을 넘었던 코스피는 지난달 23일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 하루 만에 9.99% 폭락하며 ‘검은 화요일’을 연출했다. 충격파는 바다를 건너 나스닥과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연쇄 급락(Chip-Wreck·반도체 난파)으로 이어졌다. 이달 13일에도 AI 수요에 대한 회의론으로 코스피가 9% 가까이 급락하자 미국 증시에 상장된 SK하이닉스 주식예탁증서(ADR)도 그날 밤 9.3% 동반 하락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등 주요 반도체 주가를 일제히 끌어내렸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들이 한국 증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한국 증시를 보면 AI 산업에 대한 수요와 투자 심리를 미리 가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자금까지 집중되면서 AI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더 민감하게 반영되는 시장이 됐다.▷월가의 새벽을 코스피 체크로 여는 풍경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특정 산업에 극도로 편중된 한국 자본시장의 취약성을 함께 보여준다. 외신들은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한국 증시를 두고 모 아니면 도 식의 생존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 비유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 AI 버블의 위험 가능성을 측정하는 시험지로만 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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